China/→ 中 國

'타이완(台灣)'이라는 나라에 대한 추억. (1)

우리팬 2010. 7. 1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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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 시리즈는, 몇년만에 꿈에 그리던(?) 타이완(台灣)을 찾은 @Yisoism 님하의 대만행에 발맞추어 끄적이는 글임.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자신의 첫번째 경험은 기억에 오래남기 마련이다. 특히 한국을 떠나는 첫번째 해외여행에 대해서는 평생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아해들이야, 부모님 덕에, 혹은 학교 덕에 조금 이른 나이, 그러니까 미성년일 때도 해외에 나가는 기회가 있다고는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군대에 다녀오기 전만 하더라도, 해외여행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재산세 얼마 이상의 보증인 확인서라든지, 공항에서 티켓 수속 밟기 이전에 먼저 찾아가야 하는 곳이 병무관련 사무실이었으니... 흠. 이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는 것이, 정작 병역기피를 하는 사람들, 혹은 자제들은... 굳이 해외도피라는 얄굳은 방법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일반인들이야, 자제가 만약 해외도피를 해서 병역을 피할려고 한다면, 남아있는 가족들의 사회생활에 엄청난 지장이 있음을 뻔히 아는데, 잘난, 그리고 잘사는 사람들이 굳이 자제의 병역기피를 위해 쓰진 않았을거라고. 그렇게 따지고보면, 중산층 가정 출신인 사람들의 10여년전 해외여행을 위해 이리저리 꽤나 번잡한 수속을 밟아야 했던 것은, 이젠 희미해저버린, 그저 웃음만 나오는 기억밖에 되지 않는다. (마치, 부모님 세대가 통금이 있던 그 시대를 회상하는 듯한.-_-;) 하여간, 나이를 먹어가니 14년 전 빨빨거림의 추억은 얼핏 형상화까지 되지만, 기억은 희미해져 가기에... 겸사 당시의 일들을 하나둘씩 꺼집어내보기로 한다.

하여간 대학에 들어가서 우자등가 나름대로 전공에 흥미를 붙이고자 부단히 노력하였건만, 그게 생각외로 잘되진 않았었다. 좋아만 한다고 실력이 쉽게 오르지 않는 것이 또 어학분야 아니던가. 뭔가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고, 뭔가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그래서 1학년 여름방학 때, 중국이 아닌 대만쪽으로 어학연수를 계획했었다. 또 당시 활동하고 있었던 하이텔의 중국어 동호회(hanyu) 형/누나들에게 꽤나 많은 도움을 받았고, 특히 그 中에 나와 비슷한 시기에 대만 어학연수 준비를 떠나는 누나도 있었기에 상당히 마음은 편했다. 그러나, 너무나 쉽게 생각만 한 탓일까나, 문화대학(文化大學) 어학센터 등록기간이 임박해왔고, 얼른얼른 서류를 대만쪽으로 보내야 했는데, 딱 '건강진단서' 준비가 미흡해서 결국 '어학연수'라는 소기의 목적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비.-_-; 그러나, 이미 나갈 준비는 다 했고, 더욱이나 서울까지 올라가서 대만대표부에서 비자도 받아온터라, 그냥 대만행을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 결국... 엄니께 사정을 해서 '배낭여행'식으로 1주일? 아니 정확하게는 8일 정도를 다녀오게 되었다. (아, 문득 떠오른 것은, 부산 촌넘 서울까지 올라가서 비자신청을 하는데, 신청을 하고나면 몇일씩이나 걸린다, 하는 것을... 당시 그 곳에서 동호회 회원분이 계셔서 20분만인가? 로 끝냈다는. 아마 내가 나이먹고 처음으로 '인맥'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경험일터.)

台北 中正機場.

첫 해외여행, 공항에서의 설레임...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더욱이나 나 홀로 여행인데.-_-; 당시엔 우리나라와 대만의 직항은 없었고, 일본에서 출발하여 대만을 경유해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싱가폴 항공... 이때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 스튜어디스가 있는 비행기를 탔다. 캬, 나름 선망의 직종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현실적으로/외모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얼른 접었지. ㅎ 대만의 중정공항(中正機場)에 내렸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준 사람은 어느 대만 아저씨였는데, 택시를 태우고자 호객행위를 하는건지, 나를 보자마자 대뜸 "こんにちは."라면서 어디로 가느냐 묻는다. '설마 내가 왜국인처럼 생겼남?' 글쎄-_- 아마, 당시 내가 입고있던 검은색 반팔티에... Michiko London 이라는 글자가 있었기 때문에 왜국인인가보다, 했을 것이다. 되도 안한 교과서적인 일본어로 답을 해줬지. "私は日本人ではありません."-_-v

그 당시엔 기차역 주변이 온통 공사중이었고, 건너편에 SOGO 백화점이 있었던 걸로 기억.

당시 몇몇 동호회 형님들께 온라인상으로 자문을 구한터라, 일단 공항밖으로 나와 공항 리무진 버스표를 사서 승차했다. 아... 그때가 8월이었는데, 그 숨이 콱~ 막히는 듯한 무더위, 아직도 기억난다.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공항리무진 버스 안의 에어컨, '대만의 에어컨'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복선이었으리라. 타이베이역(台北火車站)에서 내려서, 택시를 잡아탔다. 당시 중국어 실력은 거의 바닥이었기에 무슨 말이 필요했겠는가. 미리 적어둔 숙소 주소를 보여주면 "我要去這個地方."이라고 한마디 했지. 참 별말 아닌데... 참 별거 아닌데, 그래도 외국땅에서 쓰는 말인지라, 몇번을 혼자 연습해서 말을 내뱉었지.-_-; 당시 택시 기사는 아줌마였는데, 어눌한 교과서적인 발음을 듣더니 나보고 홍콩에서 왔느냐...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고갔다. 한국 대학생이려니, 여행왔다니, 혼자려니, 20살이니... 햐, 교과서에서 배운 말들 다 써먹을 때가 있더니만. ㅎ

내가 묵었던 유스호스텔 주변. 天行宫 근처로 기억함.

내 기억으로 내가 묵기로 한 유스호스텔은 타이베이 시내에서 거리가 좀 되는 외곽 쪽에 있었다. (아마, 값이 싸기 때문에 이 곳을 정했을 듯. 1박에 만원 약간 더 준 것으로 기억한다.) 입장을 했고 체크인을 시도했다. 당시 그 곳 사장은 나이가 지긋한 60여세의 할부지.-_-; 그냥 방만 하나 주이소~ 몇일 묵을낍니다~ 라고 말만 하면 될터인데, 내 딴에는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_-+ 사실 그때까지 한국에서 내가 중국어를 사용했던 중국인은 학교의 중국인 강사샘과 그녀의 아들래미 밖에 없었는데, 내 딴에는 또다른 중국인, 아니... 대만인과 말을 주고받는 그 자체가 어찌나 신기했던지, 세상에... 집의 가족수까지 다 말했을 정도였다니까.-_-; (또 뭐, 이미 어지간한 대화문들은 택시기사 아줌마와 리허설을 마치지 않았는가.-_-v) 나이 스물에, 어중쭝한 중국어를 남발하는 이 어린 아해가 불쌍해 보였는지, 그 후 8일간 묶으면서 나는 도미토리에 묵은 것이 아니라, 4인실의 나 혼자 썼다.-_-v 자신을 Captain NI 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그 할부지가 나를 위해 선심을 써준 것. 햐... 좋더니만.-_-v

나 홀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것도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고, 또 타이베이(台北)라는 곳이 어떤지도 몰랐기에... 그냥 대강 짐을 풀어놓고, 근처 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여기도 걸어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편의점도 들어가보고, 환전을 해야할 은행도 찾아놓고, 놀이터가 보이길래 그네에도 앉아보고... 뭐, 그리 우리나라와 별다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 있었다면, 가게 안의 분위기 정도겠지비. 특히 몇번 가서 뉘로우미엔(牛肉麵)을 먹었던 면집은 지저분한데 어떻게 장사를 하노... 싶었다.-_-; 사실 대륙과 비교하면 상당히 깔끔한 곳이었을텐데. ㅎ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제 풀이 지쳐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외국얘들 몇몇이 유스호스텔의 로비 쇼파에 앉아서 (말이 로비지... 그냥 거실수준-_-)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내가 어디 거기 낄 수가 있나.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외국어가 변변치 않으니 자연스레 자신감도 떨어지더라고. 사실 어학능력보다도 당시엔 그 사람들이랑 무슨 얘기를 나눠야 하나... 그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러다가 왠... 나와 비슷한 DNA를 가진 것 같은 아저씨가 나를 아는 체를 하는데, 바로 한국인이었던 것...!~ 대강 서로 자기소개를 건내보니 S기업에 다니는 아저씨가 휴가를 맞이해 역시 나 홀로 여행을 오셨단다. 문제는 이 아저씨는 영어는 되는데, 중국어가 전혀 되지 않기도 하고, 혼자 밥먹기가 애매해서 그러니 나와 같이 밖에 나가자고 했다. 또 그 유명한 타이완의 야시장(夜市)는 가봐야 하는데, 길도 모르고... 또 중국어도 되지 않으니 엄두가 안 난다면서. 뭐, 나야 선택의 여지가 있다... "가 보입시더~" 했지.-_-v (아, 이 아저씨는 나와 만난 날 다음날이 귀국날이었다.)


둘은 일단 무작정 길거리로 나왔고, 대강 지도에서 본 야시장의 방향으로 향했다. 근처에 다다랐을 때, 길거리에 지나가는 20대후반~30대초반으로 보이는 처자 한명을 붙잡고 일단 그 아저씨가 영어로 길을 물어봤다. 그 처자의 뜬끔없는 한마디가... "日本語できますか."였다.-_-; 당시엔 내가 일본어로 길을 물어보는게 불가능 했기에, 이래저래 어줍잖은 중국어로 진땀내며 물어봤었지비. 결국 찾아낸 야시... 햐~ 길거리에 넘치는 썩은두부(臭豆腐)의 향기?-_-;;; 분위기는 좋더니만. 일단 어느 가게에 들어가서 썩은두부와 대만 맥주를 주문했지. 으아~ 도저히 냄새 때문에 먹질 못하겠더군. 그 아저씨도 만찬가지였고. 저녁을 먹어야 했는데, 맥주 두어캔씩 들이켰으니 당연히 끼니를 해결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노점거리를 벗어나 어느 상가건물로 들어가 그 곳의 식당가에서 갈만한 식당을 고르기로 했지비.

두리번 거리며 식당가를 걷고 있는데, 뜬금없이 뒷쪽에서 감히 나의 함자를 부르짖는 처자 목소리가 들렸다. "야, XXX !!!~" -_-; 허억.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이국땅에서 누가 감히... 얼른 밥먹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 유스호스텔의 통금시간이 저녁 11시였다.) 나의 함자를 외치는고. 그 사람 많은 곳에서.-_-; 알고보니, 중국어 동호회에서 알게된, 나와 당시 같이 어학연수를 준비했던 그 누나를 그 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왠 남정네랑 같이 있던데, 그건 그닥 상관없고-_- 일단 저녁 먹으면서 연락처 주고받고, 전화로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았지. 이후, 그래도 이 누나 덕분에 나 홀로 여행이 아닌, 또 나름 알려진 여러 대만의 명소들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 

뭐, 일단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4인실 토미토리 객실에서 혼자 뻘쭘허이 눈만 뻘끔뻘끔하다가 피곤에 못이겨 잠들어버렸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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