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南 京

'난징(南京)'이라는 도시와의 인연.

우리팬 2006. 10. 17. 13:52
반응형

여긴 중국 남경이 아니다. 한국 부산 진여고에서 망미동쪽으로 내려오는 길.-_-;

이곳도 南京이 아니다.-_-; 부산 거제리 도로변.

02년에 中国 江苏省의 省会(중국 각 省의 중심도시)난징(南京)이라는 곳과 인연을 맺었다. 아니, 사실 따지고보면 99년쯤... 그쪽 학교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南京이라는 도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학부는 졸업해야겠다, 라는 생각에 생각하던 바를 접고, 보통 예비역으로써, 그럭저럭 성적을 가지고 그럭저럭 학사졸업을 하고 무작정 생판 들어본 적도 없는 江苏省 无锡라는 곳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는데... 마침 학부때 동기넘이 南京이라는 곳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02년 10월... 난생 처음 중국 역사에서도 말많고 탈많았던 南京이라는 곳을 밟게 되었다. 지금의 南京은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배경이었던 중국 삼국시대 오(吴)나라의 수도 建业이었고, 몇몇 국가들의 수도를 거쳐 명(明)나라의 수도, 그리고 청(清)나라 말기 대대적인 한족들의 봉기라고 할 수 있는 태평천국(太平天国)의 중심 세력지였으며... 청나라 만주족에 대한 한족들의 거사 실패 후 1912년이 되어서야 중화민국(中华民国)이라는, 중국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봉건제가 깨지고, 또한 한족이 다시 중국 대륙을 통치하기 시작하게 된 국가의 수도이기도 하다. 고유 옛 명칭은 '金陵'으로... 명칭과 관련되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런저런  분지형태로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학부때 한 교수님이 南京에 대해 말씀하시길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지, 라고 하셨는데... 역시 학교에서 가르쳐준게 다 맞는 것은 아니더라고.-_-;;;)

南京 시중심인 新街口 부근의 某愁湖 전경.

03년에 南京으로 진학을 하기로 한 것이 결정이 된 후, 무작정 기뻤던 것은 잠시, 아는 사람 하나없이 학교에 등록하고, 방을 구하고... 그리고 이래저래 중국에서의 첫 제대로 된 살림살이를 준비하면서 괘나 고생을 했던 걸로 기억되는데, (뭐, 사고도 좀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것도 풋~ 하고 한번 넘겨버릴 기억의 찌꺼기가 되었으니 뭐,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라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서도, 소위 자신이 한동안 머물게 될 지역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은 조낸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이라 생각을 한다. 대인관계도 좋고, 학교생활도 중요하다지만, 아무래도 외국이라는 타지생활, 그리고 좀 더 마음 편하게 먹고 내가 해야하는 일에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있는 곳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필요하다. 반년정도를 자전거없이, 도보로 그리고 택시, 버스로 생활을 했는데... 역시나 교통편의 불편함으로 인해, 항상 가는 곳, 또 항상 갈 수 밖에 없는 곳만 가다보니... 내가 있는 곳이 南京인지, 아님 그냥 한국에서 살던 동네인지 구분이 애매하더라고.-_-+ 물론 현지인 친구가 거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역시나 내 밥그릇은 내가 찾아먹어야 하는 법,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고부터는... 이래저래 참으로 많이 빨발거리며 돌아다닌 것 같다.

명나라 개국공식 서달(徐达) 장군의 묘.

큰길 따라... 그리고 이름 좀 있다는 곳들... 그리고 잘은 골목길들... 뭐, 이래저래 돌아다니면서 내 눈으로 직접보고, 내 귀로 직접 듣고... 하고한 것들이, 내가 그저 자료상으로 찾아본,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얻은 정보와는 조금 차이가 나더라, 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후적으로 그리 살기좋은 동네는 아니지만, 외국도시 치고는 한국인이 살기 편했거니와, 이런저런 중국 남방지역의 특성들을 하나둘씩 체험해 나갔기 때문인지, 이전에 항상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떠들던 无锡보다는 미우나 고우나 좀 더 情이 들게 된 곳이 바로 이 南京이라는 곳이 나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

中华民国의 상징 总统府

역사적으로만 본다면 꽤나 슬픈 도시다. 명나라때 잠시 수도였지만, 영락제가 자신의 조카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한 후, 매일밤 악몽을 꾸게 되는데... 신하들의 건의로 인해 당시 北平으로 천도를 하게 되어 버림을 받았고, 항일시기에는 30만명이나 일본군에 의해 대학살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며, 국민당의 거점이라 하여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에도 그리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타도시에 비해 발전이 더디었던... 이 곳이 바로 南京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아님 망구 내 생각인지... 내가 겪어본 남경 현지인들은 그리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 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의심많고, 다수 군중일 때 목소리가 크다는건 중국 전체 인민들이 가진 특성이라지만, 우째 이 곳 南京의 사람들이 좀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는다라는 느낌을 받은 것은... 어떻게보면 그 옛날부터 조금씩 조금씩 물려 내려져온 이유에서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4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알게된 그리고 '지인'이라고 칭할 수 있는 중국인들 중에, 南京 본토 토박이는 열명도 채 되지 않으니... 뭐, 내가 남경사람을 거부하는지, 남경 사람이 나를 거부하는지-_- 우째우째 되어버렸구마이.

太平天国를 이끈 홍수전(洪秀全)상.

앞으로 내가 다시 南京이라는 곳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을지, 아님 혹 편한 마음으로 다시 방문을 하게될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내가 있었던 곳이고, 나에게 있어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가장 큰 직접적 영향을 준 도시이기에, 그래도 나의 서중한 한켠의 동반자일 수 밖에 없는 점은 변함없으리라. 내가 알고있는 南京에서 생활하는 지인들도 아무 탈없이 南京에서 좋은 추억, 건강하게 만들어 갔음 하고... 또 하루 늦었지만 南京 토박이 언니 eno양의 생일도 생각해보면서 낙서는 요까이.-_-;;;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