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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西省 省会 ‘南昌(남창)’이라는 도시와의 인연.

우리팬 2006. 9. 17.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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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자 : 06년 7월 10일~12일

南昌 기차역 전경

贵溪에서 오후 늦게나 탄 기차가 江西省의 省会인 南昌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저녁 6시가 넘어서였다. 점심도 든든하게 챙겨먹었거니와, 또 기차시간을 기다린답시고 시원한 찻집에서 시간을 때웠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의 구식 硬座에서 좀 더 편하지 않을까, 라 안심을 했는데 왠걸... 그래도 에어콘이 있는 기차라고, 꽤나 시원하게 또 승객들도 적은 无座 열차였던지라 상당히 널널하게 올 수 있었다. 소요시간은 2시간 40분 정도. (贵溪에서 南昌으로 가는 오후 기차는 모두 硬座로 정오때 그리고 오후 3시 40분경 두편이 있는데 12시 기차는 에어콘없는 진정한 구닥다리 열차라고 한다. 이 한여름에 에어콘 없는 기차를 타기엔 너무 엄~하지 않은가.-_-;;;)

기차에서 南京에 있는 赵과 이런저런 문자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자기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가 南昌 사람인데, 그 사람으로 하여금 역에 마중 나오도록 해주겠다, 또 무슨 가이드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만나면 밥 한끼 같이 해라... 뭐 이런. 나야 뭐 좋았지비~ 그래도 두 아낙이 온다는 연락까지 받았을 때는, 되려 부담스럽기까지 하더라고. 근데, 뭐 어차피 이미 贵溪에서 南昌에서의 숙소 예약을 했기 때문에 대강 택시 잡아타고 가면 그만인 것을, 괜히 저녁 늦게 만나서 밥한끼 하는게 좀 그렇더라고. 그러다가 도착하기 직전 천만다행(?)이었던 것이... 마중 나오기로 했던 아낙이 버스 안에서 쓰러졌단다.-_- 첨엔 괜히 거짓말하는구나, 싶었는데... 버스 안에서 더위 먹어서 쓰러지거나 설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더라고.-_-+ 암튼, 믿거나 말거나 우야등가 자력으로... 택시 잡아타다가 편안하게 숙소까지 도착을 했다. 종종 上海를 갈 때 이용하는 중국 전국 체인점 숙소가 있는데, 뭐 딴건 아니고 그럭저럭 가격도 부담이 없고 깔끔하고 또... 인터넷으로까지 방 예약을 할 수 있어서 南昌 그리고 杭州에서의 숙소도 모두 여기로 잡았다.

중국 장시 성[江西省]의 성도(省都).

난창은 간장 강[赣;江]과 진장 강[錦江]이 만나는 지점 바로 아래인 간장 강의 오른쪽 기슭에 있으며, 간장 강이 포양 호[鄱陽湖]로 흘러들어가는 입구에서 남쪽으로 40㎞쯤 떨어져 있다.

이 도시는 BC 201년에 난창 현(縣)이란 이름으로 세워졌고, 처음에는 주위에 성벽이 있었다. 이때 난창은 위장 군[豫章郡]의 행정중심지였다. 589년에 홍주(洪州)라는 이름의 부(府)로 바뀌었고, 763년부터는 장시 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장시 성은 그때부터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여 12세기에는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이 되었다. 959년 남당(南唐) 때는 난창 부가 되었고, 그당시 이곳은 남경(南京)이었다. 981년 송(宋)이 점령한 뒤, 난창은 다시 홍주로 불리게 되었다. 1164년에는 다시 룽싱 부로 이름이 바뀌어 1367년까지 그 이름을 사용했다. 원(元:1279~1368)말에 난창은 명(明:1368~1644) 태조 주원장(朱元璋)과 지방군벌 진우량(陳友諒)이 치열한 싸움을 벌인 전쟁터가 되었다. 16세기초 영왕(寧王) 주진호(朱震濠)는 난창을 세력 근거지로 하여 명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1850년대에 난창은 태평천국운동(1850~64)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광저우[廣州]로 가는 교역로가 육로에서 기선을 이용한 연안 해로로 바뀌자, 상업중심지로서 갖고 있던 중요성도 차츰 줄어들었다. 큰 배가 직접 닿을 수 있는 양쯔 강 연안의 주장[九江] 시가 상업중심지의 자리를 어느 정도 위협하기는 했지만, 난창이 여전히 장시 성의 중심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1949년에도 식품가공을 제외하고는 산업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도시로 본질적으로 여전히 구식 행정도시이자 상업도시였다. 그당시 난창에는 27만 5,000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 1915년에 주장으로 가는 철도가 놓이면서 난창에도 처음으로 철도가 놓였다. 그후로 여러 개의 철도가 더 연결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난창에서 주장 강[珠江] 유역의 린촨[臨川]과 궁치까지 남쪽과 남동쪽으로 이어주는 철도가 연결되었다.

1949년부터 광범위한 산업화가 이루어져 오늘날 면직물과 면사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산업도시가 되었다. 식품가공(특히 정미업)과 더불어 제지도 중요한 산업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중공업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세워진 커다란 화력발전소는 바로 남쪽의 핑샹[萍鄕]에서 철도로 운반해오는 석탄을 연료로 이용한다. 기계산업도 발전했으나, 처음에는 농기계와 디젤 엔진을 주로 생산했다. 그후 자동차산업의 중심지가 되어 트럭과 트랙터를 생산하고, 타이어 같은 부속품도 만들고 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제철공장이 세워져 이 지역의 산업을 지탱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약품뿐 아니라 농예용 화학약품과 살충제도 생산하는 커다란 화학약품 공장이 있고, 종합대학도 있다. 인구 1,086,124(1990).

뭐 대강 엠파스 백과사전에서 찾아본 南昌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

(이런 것도 읽지 않고 무턱대고 갔으니 원.-_-) 근데 쓸모있는 내용이 없네.~

南昌 시중심과 그 외곡에서 꽤나 볼만한 관광지

사실 南昌을 간 특별한 목적은 없다. 책에서나 1927년에 일어난 八一南昌起义정도로만 알고 있던 도시였고, 또 들어봄직한 관광지 하나 없었으니까. 贵溪에서 吴군의 아버지께 들었던 말씀 中의 하나가 南昌에는 중국 3대 누각 中의 하나인 滕王阁가 있다, 정도로만 알고 가긴 갔는데 말이다... 이틀날 어디부터 갈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南昌의 중심이랄 수 있는 八一广场에 가서 좀 걷다가... 대강 점심을 해결하고 버스를 잡아타고 목적지인 滕王阁 참관, 그리고 八一南昌起义纪念馆 정도 관람을 하고, 대강 버스를 타고 헤매다가 저녁 먹고 돌아왔다. 이래서 자율여행이 편한건진 몰라도, 또 다른 일정을 잡을려니까 긴가민가 하길래 赵군에게 소개를 받았던 南昌 아가씨에게 문자를 보내어 의견을 물었는데, 마침 南昌에 세계에서 가장 높이 뿜어낸다는 분수의 축제가 한다는 정보를 입수, 그 곳에 갈려고 했으나... 햐~ 역시나 내 구역이 아닌 관게로 저녁 늦게 왔다리 갔다리 하는게 힘들겠더라고.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기차표 끊어다가 시내 구경 그리고 이 도시의 步行街를 좀 걷다가 또... 江西省의 명문대학, 南昌大学을 견학한 후... 기차역으로 가서 杭州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八一广场의 기념비


南昌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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