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生.有.約./→ 雜感

내가 중국에서 2006년에 갓 귀국 했을 때는... (1)

우리팬 2010. 1. 7.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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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 꽤나 오랜시간동안 살다가 대한민국으로 귀국한 경우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내가 4년동안 있었던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해 한동안 적응하느라 꽤나 힘뺀 경우는 종종 보아왔고, 또 적응부족으로 다시 중국으로 건너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얘기 또한 들었었다. 중국도 분명히 사람사는 나라이며, 요즘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예전보다는 훨씬 더 살만하게 된 것은 틈림없는데... 그럼에도 간간히 적응이 힘들다, 혹은 차라리 중국이 낫다... 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국에서 일을 하고, 또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야 뭔가 마음가짐도 다를터이고, 또 나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겠지만, 그래도 학비에 생활비에 집값에 관리비 때문에 이래저래 '돈'에 구속받고, 또 변변한 지위없이 생활을 했던 유학생들은 더욱 이런 부적응 현상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이러쿵 저러쿵하기엔 너무나 할 말이 많아... -_- 일단 생략하고, 간단하게나마 내가 귀국을 하고 종종 겪었던 한국생활 부적응 에피소드를 돌이켜 보기로 한다. (그냥 사진 정리를 하다가 눈에 띄는 넘들이 있길래 문득 생각나서... -_-; 별다른 취지는 없다. 다... 옛날 얘기지 뭐.)


중국에서 귀국 후 어느날 하루... 나는 간만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부산대 근처로 향했다. 물론 지하철을 타고. 중국에서도 지하철이야 종종 타고 다녔지만, 그래도 우째 눈 앞에 보이는 안내표지의 글자 中에 좀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은 한자(漢字)였다.-_-; 사실 나도 나름 부산토박이인데, 별로 필요는 없지만 지하철 표지판을 보며 고마웠던 것은 바로 지명을 한자로도 표기했다는 점이었다. '아... 장전동은 저렇게 쓰는 것이었구나.' 했지. 긴 화살... 분명 이 지명이 쓰이게 된 원인이 있었을터인데, 뭐, 이건 그냥 동사무소에 맡기자... 하고 지하철 출구로 나왔다.


지금은 '온천천'으로도 유명한 곳이라지만 그때 당시에는 이상하게 옛날 생각부터 났다. 저렇게 벽에다가 스프레이로 그림 그린걸 뭐라하더라.-_-+ 하여간 그 언젠가 부산대에서 술 한잔하고, 저기 저 음침한 곳에서 꽤나 기억에 오래남을만한 일들이 있었다. 참 땀나도록 많이 뛰어다녔는데... 그때 열심히 달리기를 했던 아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괜히 한번 옛날 추억에 빠져봤다가... 약속시간에 맞춰 목적지로 향했다. (어, 미안하다. 지금은 전혀 그 아해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다.-_-;)


집에 가자. 지하철 막차를 놓치지 않을려는 처절한 몸부림은 예전부터 익혀진 본능인가보다. 달려야 한다. 그리고 뛰어야 한다. 놓치면 X 된다. 버스라면 소리라도 외치며 기사아저씨를 불러라도 보겠지만, 지하철은 정말 알짤없다. 중국에선 술 한잔 마시고 귀가할 때 이런 급박함은 전혀 없었는데 말야. 어디에서 술을 한잔하든, 택시비 2~3000원이면 집앞까지 모셔다 줬는데... 아, 이제 그런 것들은 옛날 일들이 되어버렸구나.-_-;


너무 열심히 달린 탓일까. 아니면 달린 후 지하철을 탔다, 라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괜히 자리에 앉았다가 눈 좀 붙이는 바람에 눈 떠보니 생판 딴 곳을 지나고 있었다. 허겁지겁 내렸으나... 으아, 여기까지 왔나.-_-; (내가 내려야 할 곳 대략 8,9 정거장은 지나간 듯.-_-;) 부산대에서 우리집까지도 만만치도 않은 거리인데... 여기까지 오면서까지 눈을 못 뜬 것은 한국 알콜, 즉 소주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하기사 중국에서 거의 맥주, 아니면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백주나 소주를 마셨지... 라며 소주에 대한 주량이 약해진 탓만 하며 일단 내릴 수 밖에 없었지비. 와... 그래도 그렇지, 부산대에서 동아대까지 거리가 어딘뒈.-_-+


어랏. 분명 내가 중국 생활을 하기전에도 있었음직한 팝콘 자동판매기인데 왠지 신기하게 느껴진다. 있다고 신기한게 아니라, 이거 중국엔 없잖아? 라는 생각이 불쑥든다. 본능적으로 중국에 이 기계 들여놓으면 장사 좀 될까? 싶다. 하기사 과자 자판기는 물론이고, 간단한 소화제나 진통제도 자판기에 넣고 파는데... 팝곤 기계라 해서 특별한게 있겠누. 게다가 나도 먹어봐서 아는데, 노점상에서 파는 값싼 팝콘이 위생은 좀 그래도 맛은 더 있더라. 초콜렛맛 팝곤... 종종 먹었는데. 아, 오늘따라 땡기네.


오... 공중전화다. 참, 이때까지 내가 핸드폰이 없었으. 지난 4년간 1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어왔었는데, 보통 3주간 머물면서 가장 많이 애용했던 물건이었다. 친구와 약속을 하고 연락을 한답시고 공중전화 찾아 삼만리를 했던 적도 몇번 있었고, 왜 있던 공중전화마저 없애고 있냐고 내 딴에 KT를 욕하기도 많이 했다. 아직도 모르느뇨, 윤종신의 명곡 '텅빈 거리에서'의 마지막 소절에 나오는 가사, '외로운 동전 두개'를.-_-; 이젠 아예 몇천원짜리 카드를 챙겨야 되는구나... 싶었지.


난 무슨 대한민국에 IMF가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버스 좌석에 붙은 좌석 뒤에도 파산, 지하철에도 파산, 공공 통지판에도 파산... 파산파산파산.-_-; 귀국한지 몇일 됐다고 가장 많이 눈으로 본 글자가 '파산'이냐. 하기사, 벌어놓은게 있어야 '파산'이라도 하지.-_-; 그냥 조용히 사업만 안 하면 된다, 신용카드만 안 쓰면 된다, 라고 자기보호, 세뇌를 시킨 후... 다시 지하철을 기다렸다. 아... 재수, 지하철이 왔다. 오긴 왔는데, 이거 신평에서 오는 막차인지라, 우리집까지 안가고 부산진역까지만 간다. 그래도 예전에 동아대 출신 사람들과 교류를 했던 적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것도 몰랐으면, 괜한 객기에, "왜 여기까지밖에 안 가는데요?"라고 따졌을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배운 것은 원리원칙 따지는 척 하며 큰소리 치는 것이었으니까.-_-+ (그마나 내가 남방지역에서 생활해서 그렇다. 북방지역은 쌈 한번 일어나면 주먹부터 나간다.-_-+)


아, 집으로 가는 지하철 타기 전에 이 '당리'라는 곳과의 인연이 떠올랐다. 여기 오래된 친구가 살았고, 또 결혼까지해서도 살고 있는 곳이라는게 생각이 나더라고. 고등학교땐가, 친구 얼굴 한번 본다고 나와 그닥 관련이 없는 이 곳까지 온 적이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살짝 웃음이 나지만, 아무래도 이 동네 아파트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험해서인지, 당시 친구네 아부지는 저녁에 집밖으로 나가는 그 얘에게 살포시 워키토키를 건내주셨다지.-_-; 시집간 후로 딱 한번 메일을 주고받았을 뿐 연락을 할 수도, 받아본 적도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뭐, 연락은 안 하더라도 얘들 가르치면서 잘 살아가고 있을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사람의 기억력이란게 정말 무서운 것이... 상당히 오랜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또 내가 특히 숫자에 약한 넘임에도 불구하고... 얘네 집, 그러니까 지금은 친정집일터인데... 그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다. 그 집에 전화 몇번이나 걸어봤다고... 허허. 그래서인지 나도 나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_-;;;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집근처에는 왔다. 그냥 들어갈 수가 있나. 간만에 추억의 '도시락' 하나 사먹어보자. 중학교때 매점에서 유일하게 팔았던 컵라면. 이 컵라면을 먹는 날이면 국물을 노리는 수많은 적들 때문에 철저한 분배를 해야만 했다. 국물 따르는 것도 기술이다. 잘못하면 불어터진 면발만 남는다. 아... 나이를 먹으니 이젠 면발은 물론이고, 국물도 다 내 것이구나. 나도 여유롭게 국물에 밥 말아먹을 수 있다.-_-v 하여간 이 날 10여년만에 추억의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먹고 먹었으니 중국에서 찐 살이 빠질리 없었고...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놀랄만큼, 놀릴만큼의 뚱띵이가 되어 있었는데, 3년이 흐르니... 결국 12Kg나 빠져있더라.-_-v 남들 한다는 변변한 다이어트도, 그렇다고 술도 따로 끊어본 적이 없다. 그냥 살다보니 빠져있었고, 살다보니 체중계 바늘이 친절하게도 아래숫자로 향해져 있더라고. 더욱 감격스러운 것은 어디 앉을 때마다 접혔던 뱃살이었다. 맥주로 단련된 啤酒肚, 이거 쉽사리 빠질 넘도 아니고... 게다가 나잇살도 있으니 얼마나 신경쓸 수 밖에 없었는가. 이제 접히는 일 없다.-_-v 이제는 접힐리도 없다. 2010년이 밝아온 지 1주일이 지난 후... 내 딴에는 가벼운 몸뚱아리로 시작한다고 다짐하는 이때, 울 엄니의 앙칼진 잔소리 한마디,


"이제 6,7kg만 더 빼면 되겠네."

억장이 무너진다, 무너져.-_-;;;


이것도 '루저'의 恨인가... 키에 몸무게 맞추기가 정말정말 불가능한 일 같다. 우리가 작은게 아니다... 너네가 커버린 것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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