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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쑤조우(蘇州)의 호구탑(虎口塔) 가는 길.

우리팬 2007. 8. 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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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시 : 2007년 7월 20일

호구산(虎丘山)으로 올라가는 입구.

호구산(虎丘山)은 쑤조우(苏州)성 서북쪽에 위치해 있으면 시내로부터 5Km 정도 떨어져 있다. 전해지기를, 춘추시대의 오왕 부차(夫差)는 이 곳에 아버지를 묻었는데, 장례 3일 후 백호가 그 위에서 보았다하며 호구산 혹은 호구(虎丘)라고 부른다. 산의 높이가 36m밖에 되지 않아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평지가 대부분인 苏州인지라, 그다지 높지 않은 이 곳에 올라도 주위의 멋진 苏州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역시 이 虎丘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호구탑(虎丘塔)으로, 오래전부터 명승지로써 이름을 날렸다. 송나라때의 소동포(苏东坡)"到苏州不游虎丘者, 乃憾事也." (소주에 와서 虎丘를 즐기지 않은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虎丘는 옛 유적지가 많으며, 전해오는 이야기들도 풍부하다. 그래서인지 이 곳을 "吴中第一名胜"라고 불려지고 있다. 이 곳에서 유명한 곳은 断梁殿、试剑石、枕头石、真娘墓、千人石、剑池、天下第三泉、孙武亭、望苏台등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곳에 와서 가장 뿌듯했던 점은, 바로 天下第三泉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이로써, 镇江에 제1, 无锡에 제2, 苏州에 제3... 흠흠. 이게 재미난 발견이지 모.-_-;;;

우짜등가, 우리 일행은 입구에서부터 찬찬히 虎丘塔까지 걸어 올라갔는데, 그 중에 사진이 있고, 기억나는 것만 정리해 보기로 한다. 사실 이 날 워낙 무더웠던지라, 가이드 아저씨가 한 말에 그리 집중할 수도 없어 거의 듣지도 못했고, 또 앞서 한산사(寒山寺)와 마찬가지로 유명 관광지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 이 포스트내에서의 虎丘塔에 대한 설명은 중국쪽 사이트에서 발췌를 해, 번역을 하여 덧붙인 것들이다.

감천(憨泉).

돌두꺼비가 되었다는 노스님.-_-+

입구로 들어와 얼마되지 않은 곳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은 감천(憨泉)이라 부른다. 전설에 따르면, 양나라때 憨憨이라는 동자승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부모를 잃고, 의지할 데가 없었다. 게다가 눈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虎丘에 있는 절에 성깔 더러운 노스님과 함께 지냈는데, 그 노스님은 동자승을 하인처럼 부려먹으며 매일같이 괴롭혔다. 당시 虎丘에는 물이 없어 항상 동자승이 산아래로까지 내려가 길러와야 했고, 눈이 먼 동자승에겐 매우 힘든 일이었다. 어느날 동자승은 물놀이를 하는 꿈을 꾸었는데,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자다가 그만 다리를 삐게 되었다. 그걸 본 노스님은 허벌나게 욕을 해대버렸고… 꿈에 실망한 동자승은 꿈에서나마 두 눈을 뜨고 날이 밝을 때까지 울었다고 한다.

다음날, 동자승은 산아래에 물을 기르러 내려가 물놀이를 했는데, 조심하지 않아 정말로 다리를 다치게 되었다. 산아래에서 虎丘까지 엉금엉금 기어올라가던 동자승은 올라가는 도중, 바닥의 축축함을 느꼈고, 순간적으로 虎丘山의 옛이름이 海涌山이라는 것을 떠올렸고, 전해들은 소리로 산의 우물이 바다로 통한다라는 얘기가 생각이나, 그 곳이 바로 우물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 열심히 파기 시작한다. 그 광경을 본 노스님은 바닥이 보기엔 물기도 없고 그냥 마른 땅이었는지라, 동자승의  말을 믿지 않는다. 노스님은 비웃으며 그 곳에서 물이 나오면, 자기가 두꺼비가 되겠다고 하는데, 시간이 흘러흘러 동자승이 판 구멍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어느날 그 구멍에서 물이 샘솟게 되는데, 그 물줄기를 맞은 동자승은 눈을 뜨게되어, 본인이 직접 물이 샘솟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그 물이 눈을 뜨게해준다는 말에 병을 치료하러 찾아오게 되고… 이후 그 동자승 憨憨은 경전을 열심히 연구해, 일대 고승이 된다. 뭐, 이런 전설인데, 이 우물이 바로 그 감천(憨泉)이라는 우물이고,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속담의 어원이기도 하다. 아, 그 노스님… 그 영감님 말 한번 잘못했다가, 우물 바로 옆에서 두꺼비가 되었다고 하니, 바로 지금 남아있는 우물 옆의 돌덩이란다.-_-+
 

검을 주조하고, 그 위력을 알아보기 위해 베어봤다는 시검석(试剑石).

이 시금석(试剑石)은 검을 좋아했던 오왕 합려가 당시 최고의 검 주조자에게 명을 내려 보검을 만들게 했는데, 그 사람은 처와 함께 열심히 검을 주조하고자 했으나, 불이 약해 결국 처가 불속에 뛰어들어 천자 제일의 보검을 만들었다. 그 후 그 검은 합려에게 받쳐졌고, 검을 보고 크게 기뻐한 합려는... 그 칼을 시험하기 위해 돌을 잘랐으니, 이것이 바로 사진 속의 시금석인 것이다.

真娘의 묘.

묘에 대한 간략한 설명.

真娘, 본명은 호서진(胡瑞珍)으로 당나라때 소주의 가기(歌妓, 노래를 전문으로 하는 기녀)였다. 원래 수도 장안(长安, 현재의 서안西安)의 학자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아리따웠으며, 금을 잘 탔고, 서화에 능통했다. 안록산의 난때 부모와 함께 남방으로 피난을 왔으나, 도중에 가족들과 헤어져 쑤조우(苏州)에 이르게 된다. 후에 山塘街의 '乐云楼''이라는 기원에 속아 들어가는데, 재능과 용모가 뛰어나 금새 고을에서 유명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재능만을 팔뿐, 몸은 팔지 않았다. 당시 성안에 부유한 집안의 자제 王荫祥라는 젊은이가 그녀에게 반하게 되는데, 청혼을 하지만 그녀는 부모의 승낙이 없다는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을 한다. 王荫祥는 포기하지 않고 기원(妓院)의 사람을 매수해 그녀와 동침을 시도하는데, 완강히 반항하던 그녀는 결국 자살을 한다. 그제서야 후회를 한 王荫祥는 그녀를 후하게 장례를 치뤄주고, 다시는 아내를 얻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이후 문인들이 그녀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묘에다가 글을 써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모리화(茉莉花)는 본디 향기가 없었다고 한다. 真娘의 사후 그녀의 영혼이 꽃에 옮겨져 모리화가 향기를 지니게 되었다고. 그래서 모리화를 香魂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모리화차(茉莉花茶, 자스민차)를 香魂茶라고도 한다.

'剑池'에 대한 설명. 역시 오왕 합려, 부차에 대한 얘기가 실려있다.

이 연못 아래에 수많은 보검들이...! -_-;

虎丘塔으로 올라오는 길에 계곡의 벽면에 虎丘剑池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네글자는 당나라때의 서법가 颜真卿의 필체이라는데, 지금의 虎丘 두 글자는 顔씨의 원래 필체가 아니라, 후인들이 보충해서 새겨져 넣은 것이라, "真剑池、假虎丘"라는 말도 있다. 이 剑池의 안래에는 오왕 합려(阖闾)의 묘가 있다고 하며, 검을 좋아하던 부왕 합려를 위해 당시 오왕 부차가 아버지를 묻을 때 어장검(鱼肠剑)을 비롯 기타 보검 3천점이 같이 묻었다고 전해졌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진시황 역시 사람들을 보내 합려의 묘를 파 보검을 찾고자 했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그 웅덩이에 물이 생겨 지금의 검지(剑池)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껏 많은 도굴꾼들이 이 보검을 꺼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고, 또한 현대과학의 발달로 여러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시도했으나, 이제껏 성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 두 구멍은 剑池를 건너가는 다리에 뚫은 것인데, 오왕 부차가 서시와 함께 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일부로 뚫은 것이라고 한다. 그냥  보기엔 위험하니까, 일부로 아랫쪽으로 얼굴을 집어넣고 감상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래도 일국의 왕과  그의여인이  몸을  숙이고 이 구멍에 얼굴을 집어넣는 모습이 상상이 안되긴 하다.-_-;;;

호구탑(虎丘塔)은 운암사탑(云岩寺塔)라고도 한다.

동양의 '피사의 사탑' 호구탑(虎丘塔)

이 탑 보수공사 기록비석.

계곡을 따라 虎丘의 꼭대기에 올라오는 길에 虎丘에서 유명한 虎丘十八景을 볼 수 있는데, 각각의 유적지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 신화들을 다 가지고 있다. 이 중 역시 가장 유명한 것은 호구탑(虎丘塔) 혹은 운암사탑(云岩寺塔)인데, 송나라(961년)때 벽돌로 만들어진 8각탑이다. 총 7층이며 높이는 47.5m이다. 수나라의 문제가 이 곳에 탑을 지었다는데 그것은 목각탑이었다. 송대부터 청말까지 여러 차쳬 훼손이 있어 원래의 높이는 알 수 없다. 건축설계의 원인으로, 탑은 400년전부터 서북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뭐, 동양의 '피사의 사탑'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탈리아 피사탑의 중심에서 기울진 정도는 4.4m이고, 이 虎丘塔는 2.3m이다. 1956년에 탑내부에서 대량의 문물이 발견되었고, 그 中 '越窑莲花碗'는 보기드는 예술 진품이다.

호구산(虎丘山)에서 내려오는 길에 멀리서 나마보이는 호구탑(虎丘塔)


아, 이러나 저러나... 정말 관광지 포스터는 정말 재미없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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