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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82

한국의 '도시가스'를 사용하면서.

중국에서는 대게 북방지역쪽에 살았기 때문에, 한달에 RMB 2千 정도를 내고, 11월 15일~3월 15일까지 일명 중앙난방이라고 부르는 供暖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는데, 막상 한국에 정착을 해서 날이 추워지니 신경쓰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바로 '가스비' 문제였다. 지금 살고있는 집에서 지난 3월/4월 한달 반정도 사용한 가스비 청구서를 보고 질겁을 해버려서-_- (오래된 아파트인지라 실내 열보존이 엉망이라, 열심히 보일러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문제가 있었지비.) 이번 겨울은 날이 쌀쌀해지는 동시에 보일러를 잠깐잠깐 사용하면서 (비가 좀 오는 날엔 습기 제거를 위해 아~주 가끔 보일러를 틀기는 했다.) 이래저래 잔머리를 굴릴 수 밖에 없었다. 한달에 여섯자리 비용을 감당하기엔 너무-_- 세상의 많은 ..

Corea 2021.12.08

부산 송정에서, 새해를 미리 맞이했다.

아무래도 아직 중국물을 못 벗어서인지, 양력 1/1보다는 음력 1/1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짧은 신정보다는 하루이틀이라도 휴일이 긴 구정(설날)을 더 중시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10여년간의 중국생활 때문인지 7일, 일주일이나 되는 기나긴 연휴가 아직도 생각이 들더라고. 아, 글고보니 이틀 뒤면 설날연휴가 시작되긴 하네. 하.여.간. 지난 크리스마스때,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어딜 다녀올까~ 하다가 마침, 1/1에 새해맞이 해수욕장 입장이 금지된다, 라는 뉴스가 생각이 나서 입장금지 몇일전에 일찍 해수욕장을 한번 찾아봤지비. 그래도 나름 부산출신이라고 집에서 가까운 광안리나 사람들이 많다는 해운대보다는, 그래도 조금 한산한(?) 송정 해수욕장을 찾았다. 시간대를 ..

Corea/→ 경 남 2021.02.09

2018년 춘절(春节) 연휴를 앞두고.

본의 아니게 이 中国 땅에서 일년 中의 가장 큰 명절이라고 하는 춘절(春节), 즉 설날, 혹은 구정을 보내야 했던 횟수가 적지가 않다. 유학생활 당시에도 1년에 한번 방학때 한국에 들어갔는데, 대부분 여름방학에 건너갔었고, (여름방학이 겨울방학보다 길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본의는 아니었으나, 몇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국에서 명절을 지내곤 했었다. 사실 어릴적부터 설날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 말고도 형제가 2명이 더 있기 때문에, 나 하나 집에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신 해주겠지? 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굳이 명절을 챙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소시적 설날때마다 이런저런 친척들이 오고가며 정감보다는 감정싸움을 더 자주 봐..

China/→ 中 國 2018.02.11

’奶茶‘에 대한 낙서.

(좌) 한국에서 판매 중인 奶茶 (우) 중국에서 판매 중인 奶茶 사실 중국에서 우짜다보니 접한 이 奶茶라는 음료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그리 친분이 없다. 그저 유학생활 듣기론, 적지않은 한국의 처자들이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이 음료에 빠지는데, 한번 빠졌다하면 살이 쪄서 돌아가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정도로만 얘기를 들었을 뿐. 그러다가 2009년이었나, 青岛(칭다오)에 한 2주 정도 머무는 동안, 한국에서도 일명 버블티, 라고 부르는 珍珠奶茶가 유행한다는 얘길듣고, 호기심삼아 길을 지나가다가 한번 맛을 봤는데, 달콤한 우유맛이 나는 것이, 그리고 안에는 입이 심심하지 않을 정도의 珍珠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살이 찔만도 하겠다, 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이거말고도 중국에서야 살이 찔만하게 만드는..

China/→ 中 國 2017.08.23

옛날 일 뒤적거리기.

앞만 보고 달려라, 뒤는 돌아보지 말라... 라는 식상한 명언식 문구를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아니한다. 뭔가 한가지에 집중을 했을 때나 사용하는 말이거나, 혹은 이미 지나가버린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훌훌털어버려 새로운 앞날을 위해 정진하라, 라면 또 모르겠지만... 왠지 그 '만(!)'이라는 조사가 꽤나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만'을 '도'로 고치면 안될까나. 흠흠. 올 여름에 잠시 한국에 들어갔을 때, 예전 모교 주변을 잠시나마 어슬렁거렸는데, (그래봤자 단골 식당 찾는다고 조그나만 경차로 골목길을 배회하고 있었지비.) 그러다가 우연찮게(?) 혹은 우짜다가... 예전에 군제대 후 2년 정도 살았던 자취집을 지나치게 되었다. 군입대 전후로 해서 두 집에서 자취를 했었는데, 사실 첫번째 집보다는..

그 이름하여 아름다운 '비빔밀면'.

나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언젠가부터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장기간으로 생활을 하면서, 그래도 최소 1년에 한번씩은 한국땅을 밟는데, 꼭 밟고나면 가장 먹고싶은 것, 먹어야만 하는 것이 바로 '비빔밀면'이 다. 값싸고, 매콤하며, 나름 입맛 돋게 만드는 음식이라 한국인이라면 그 누가 마다하겠는가마는, 나에게 있어서 '비빔밀면'이란 학생시절, 특히 지갑이 홀쭉하여 내 마음대로 지갑을 열 수 없었던 그 시절에... 그래도 2,500원이면 한그릇 뚝딱 맛나게 먹을 수 있었던, 나름 기호식품이었던 것이다. (군것질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 굳이 표현한 것이 바로 '기호식품'.ㅋ) 그러다보니,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리무진을 타고 우리 동네에 내려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또 굳이 단골 밀면집을 찾았던 것이다. (단골..

Corea 2014.02.25

부산 괘법교 위, 파노라마 사진.

지난 설날, 백만년 만에 모국땅을 밟았다. 유학때나, 직장생활때나... 항시 한국에서의 설날이 아닌, 중국에서의 춘절(春节)를 폭죽소리와 함께 보내다보니, 모국에서 명절을 보낸다는 씁쓸함보다는, 중국땅에서 폭죽소리에 괴로워해야 하는 고통 때문에 더 심란했던 듯 싶다. 하여간, 몇년만에 어쩌면 중국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폭죽소리와는 굿바이~ 한국땅에서 빨빨거리며 다녔으니... 동생한테서 차를 한대 빌렸고, 또 그것을 타고 언젠가 학생시절에 종종 드라이브용으로 찾아갔던 괘법교를 찾았으니. 여전하더니만. 그리 이쁜 동네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의 고향땅, 그리고 종종 찾던 곳의 사진. 그래, 한번 남겨봤다.

Corea/→ 경 남 2014.02.24

'내호냉면'에서 5,500원짜리 밀면을 먹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가끔은 갈팡질팡한 날씨이지만, 화창한 날씨 오후 즈음이라면 불현듯 시원한 냉면 혹은 밀면 한그릇이 땡기게 된다. 얼마전에 朴군과 삼겹살 집에서 4,000원짜리 가게 냉면을 하나 먹어봤는데... 역시 가게용인지라 그냥 그저했던지라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 왜... 있다. 육수랑 면이랑 인스턴트 비슷하게 만든 가게용 냉면. 이거 중국까지도 들어가는 모양.) 그러던 차, 어느 날 오후 金군으로부터 배드민턴 한게임 치자는 제의를 받았다. 내가 또 배드민턴 하면 사족을 못 쓰지 아니한가. 그래서 찾아간 장소가 바로 노포동의 시민체육관. 1인당 1시간에 1,000원의 요금을 받더라. 중국같은 경우엔 코트당으로 계산이 되는데, 여긴 머릿수로 계산을 했다. 다 좋은데... 멀어.-_-;;;..

Corea/→ 경 남 2010.05.16

내가 중국에서 2006년에 갓 귀국 했을 때는... (3)

아직 귀국한 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다. 고로, 아직 적응이 덜 되었을터이다. 자, 얼른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면서 한국생활에 좀 적응을 해보자. 분명 내 입에선 유창한(?) 한국어, 아니 표준어보다 더 구사하기 어렵다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_-가 자연스레 나오고 있는데, 어째 티는 안 나지만 남들과의 대화가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아, 그러니까 가족이나 주변의 지인들과의 대화말고... 가게 같은데... 가서 얘길 나누면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자꾸 들게되더라고. (내가 방금 한말이 맞나? 내가 지금 이렇게 돈 주는게 맞나? 혹, 돈을 던지진 않았나?)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중국에서 간혹 돈을 건내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 황당할 경우가 있잖우. 이래저래 실수 아닌 실수를 할까봐 나름 노심초사 했던 것도..

내가 중국에서 2006년에 갓 귀국 했을 때는... (2)

거의 3년이나 지난 일이다. 다시 꺼집어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데... 그래도 대한민국 남정네가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내 조국을 떠나서 처음으로 장기생활을 하고 돌아와보니, 이거 무슨 군복학 후의 사회적응보다 더 힘들더라고. 군복학 후에는 그래도 이미 알던 사람들도 있거니와 또 적응에 힘들제? 하면서 위로해 주는 사람도 있었건만... 외국서 살다오니까 '어, 왔나?'라는 반응밖에 없었으니. 사실 어, 왔나? 라는 말은 그렇게 가슴 아프지 않았다. 언제 또 가노? 얘길 들었을 때... 흑.-_-; (나의 소심한 복수는 이 말을 건낸 친구넘에게 지난 3년간 술 자~알 얻어먹었다.-_-v) 하여간... 다시 옛날 얘기나 해보자. 머리가 귀신같이 길러져 있었다. 참다참다 못해 이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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