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南 京

중국 대지진 이후와 사스(SARS)의 추억.

우리팬 2008. 5. 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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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그러니까 015B의 대표곡 중의 하나인 '5월 12일'에 중국에선 끔찍하고도 처참할 정도의 지진참사가 일어났다. 이런저런 원인과 현 상태, 그리고 돌아가는 추세는 둘째치더라도 일단 수많은 사상자를 낸 일에 대해선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중국 현지에 있는 붕어언니야께서 동영상을 하나 보내줬는데, 바로 숙사 밖 도로변에서 들리는 구급차 소리였다. 아무래도 사람의 경각심을 울리게 만드는 가장 큰 영향력있는 소리가 바로 이 구급차 소리가 아닐까나. 언젠지도 모르고, 시도 때도없이 울려퍼지고, 또 지나가는 구급차를 보며 가슴쓸어내릴 수 밖에 없는... 그래, 사실 현지에 있는, 자신의 터전에서 참사를 당하는 중국인들도 그렇지만, 그 나라에서 내 돈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유학생들 정말 수고가 많다.-_-;



동영상을 보는데, 문득 03년 내가 江苏 无锡에 있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도 비슷하게 아니, 어쩌면 더 자주, 더 시도 때도없이 구급차들이 지나갔었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 홀로 고립된 듯한, 한국으로 귀국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쌓일 수 밖에 없었다. 아, 사스(SARS, 非典)때 말이다.-_-;

2003년 6월 1일, 중국 江苏 无锡站.

02년 말부터 광동에서부터 발병된 이 전염병은, 초기에는 우리나라 기사에서도 '괴질'이라는 명칭을 썼다. 첨엔 그냥 드넓은 땅 광동성에서 일어난 일이려니... 그랬다만, 수많은 유동인구를 통해 중국의 북부 내몽고(内蒙古)까지 확산되었고, 특히 북경(北京)에서의 참상은 이로 말할 수도 없었다. 매일 뉴스나 혹은 사스 비상대책 사이트에선 감염자수, 의심환자수를 알렸고, 특히 북경에서는 하루아침에 그 수가 대폭 증가했으니... 바로, 중국의 핵심부라 할 수 있는 中南海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시내쪽에 있는 환자를 외곽지역으로 이송하다가 생긴 문제였다. 수많은 주택가와 학교가 폐쇄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정부당국에서 폐쇄된 지역에 식량을 공급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었다. (마늘이 사스 예방에 좋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중국내에서 잠시지만 한국 김치의 소비량이 늘어나기도 했다. 또 항간에 북경에 있는 한국인들은 사스예방을 위해 마늘을 다져다가 꿀을 비벼 먹었다는-_-)

사스 이후로 생긴 유행어가 바로 已消毒 (이미 소독했음) 이다.-_-;

내가 있던 무석에서는 감염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구급차가 오고가는 소리를 들었고, 또 江南大学 어느 캠퍼스의 기숙사가 폐쇄되었다, 라는 말까지 돌기도 했지만, 정작 감염자는 한명도 생기지 않았다. 당시 같은 기숙사에 있던 어느 한국 아낙은, 한국에서 대학을 포기하고 청운의 꿈을 품고 중국에 발을 들여놓았건만, 사스 소식으로 엄니가 졸도까지 하셨다는 말에 급히 귀국을 했는데... 지금 뭐하고 있을랑가.-_-+ 암튼 그 사스로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한국 뉴스에는 소형 방독면을 차고 귀국하는 유학생들의 모습이 보였고... 또 성능좋다는 3M 방독면이 중국내 한국인들 사이에서 공동구매 되기도 했었다.

전염병도 어떻게보면 천재(天災)라 할 수 있고, 또 이번의 지진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끔직한 사고뒤의 사람들이 도리어 인재(人災)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 위기를 통해 이런저런 사건을 만들고, 사고를 일으키고 하는 것들... 정말 하늘에 老天爷가 있다면 기가 찰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때를 이용해 돈벌이에 이용하고, 또 그때를 이용해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또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기억의 뒷켠에 놓아두겠지만, 정말 위급하고 힘들 때일수록 국적, 남녀노소를 불문한 단결심을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도 싶다. 국가적 비상사태가 일어나면, 남을 탓하기 전에... 그런 여유로 너희들부터 보담아주어라, 중국인들아 좀!


그냥 문득 바로님의 포스트와 미얀마의 사이클론이 생각나서 끌쩍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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