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江 蘇

중국의 문리대사(文理大師) 고육수(顧毓琇)선생 기념관.

우리팬 2008. 11. 18. 19:01
반응형
방문일시 : 2007년 7월 11일


고육수(꾸위시우, 顾毓琇, 1902~2002) 원사(院士)는 대게 장쩌민(江泽民) 전 주석의 스승으로 알려져있는데, 중국 현대 현대시기의 걸출한 문리대사(文理大师)이다. 문리대사라는 이름 글자뜻 그대로 교육가, 과학자, 시인, 희극가, 음악가, 불교학자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학자이다. 아, 주롱지(朱镕基)의 스승이었기도 하다. 워낙 경력이 화려하여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들 듯 싶은데, 청화대, 중앙대의 교수 겸 주임, 소장등을 역임했으며, 후에 중앙대학(南京), 정치대학(台湾)의 교장... 또한 음악악단이나 학원의 단장과 원장을 겸했다. 이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교수생활을 하였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종신 명예교수, 또 청화대 북경대의 명예교수가 되었다.


바로 중국의 江苏 우시(无锡)에서 1902년에 출생하여, 청화대를 거쳐 미국에 유학하여 MIT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적을 가진 화인으로 되어있는데, 1950년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거주하다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살았다. 이래저래 경력을 보니, 그의 일생은 문과와 이과를 가리지 않는 정말 박학다식한, 진정한 박사(博士)라 칭할 수 있다하겠다. 몸은 미국에 있고, 옷은 양장을 입고 있었지만, 중국을 오고가며 중국인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덩샤오핑(邓小平)의 시기에도 두번이나 초청을 받아, 개혁개방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하며, 장쩌민 역시 중국 정치의 메카인 중남해(中南海)로 초청하여 대접을 했다고 한다. 2002년 9월 9일, 향년 100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02년에 우시에서 어학연수를 할 당시에는 顾毓琇와 관련된 것을 전혀 몰랐는데, 작년 여름에 이 곳을 찾았을 때, 자주 가던 시내 근처의 도로변에서 기념관이 들어선 것을 보았다. 그때까지는 중국의 江苏 无锡 하면 떠오르던 사람이 전종서(钱钟书)였는데, 이 작가의 故居를 가기도 전에 顾毓琇 선생의 기념관부터 가게 되었다니. 흠흠. (2004년까지 이 기념관은 顾毓琇 선생의 故居로 남겨놓았다가, 2004년에 市에서 기념관으로 개수공사를 했다고 한다.) 이 기념관은 무료다.-_-; 우시 시내를 나갈 일이 있다면, 잠시 들렸다가 한바퀴 둘러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대강 훑어본다면 30분도 안 걸릴 정도로 규모는 작은 편이다.)


기념관 안의 물품들을 보면, 각 대학의 명예교수 증서 및 장쩌민 전주석과의 사진, 대만 장개석(蒋介石)의 후계자였던 장경국(蒋经国)등의 친필 서신들이 진열되어 있다. (각 사진에 일일히 주석을 달고싶으나, 1년 반이나 지나서인지 당췌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_-;)

钱钟书故居 방문을 두번이나 실패했는데, 정말 가까운데 있었구마이. ㅠ.ㅠ



无锡에서 기념관을 갔을 당시에는 귀국하면 자료 좀 찾아보겠다, 라고 생각만 했으나 이제서야 포스트로나마 기억을 남겨놓는다. 재미난 것이 옥돌 수()자가 중국의 지능abc 입력기에는 없었는지, 인터넷상으로 검색을 해보면 顾毓王秀라는 검색어가 상당히 많이 잡혔다. 심지어 百度 백과사전 페이지에도 顾毓琇, 顾毓秀 두페이지가 모두 등록되어 있으며, 내용 역시 다르게 되어있다. 물론 동일인물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