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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쑤조우(蘇州) 여행, 한산사(寒山寺) 참관기.

우리팬 2007. 8. 2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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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자 : 2007년 7월 20일

사실, 여행 가이드를 끼고 단체로 움직이는 것을 상당히 꺼려한다. 아니, 글고보면 가이드와 함께 중국의 관광지를 돌아다닌 것이 세번밖에 되지 않으니... (한번은 03년 南京 학회때 南京, 扬州 여행, 또 한번은 04년 周庄 여행... 그리고 이번.) 이런저런 핑계보다도, 단체로 함께 움직여야 하고, 또 한정적인 시간동안 가이드의 고정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귀찮음의 이유겠지만... 사실 성격 자체가 어디에 메어있는걸 싫어하기 때문에,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갔었고, 내가 보고싶은 곳을 봤기 때문에... 이제까지 어딜가더라도 내가 보고, 느낀 것들과, 그리고 여행 후... 내가 따로 찾아보고 정리해서 모아놓은 것들이 바로 내 재산이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쑤조우(苏州), 상하이(上海), 쪼우장(周庄)은 그러지 못했다. 일행들과 함께 여행사에 소속된 조선족 가이드를 끼고 돌아다녀야 했는데, 무려 3박 4일... 꼭 무슨 한국에서 중국 관광 패키지 사서 오는 여행과 비슷하게 했던 것 같다. 물론, 혼자 여행 다닐때처럼 거리를 헤매거나, 또 밥 먹는다고 몇시간씩 지체하거나 하는 일들은 없었지만,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찍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한 시간이,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기는 하다. 상당히 무더웠는데, 아마 개인적으로 여행을 갔다면 그렇게까지 더위를 참으면서 돌아다니진 않았으리라. 게다가 중요한 것은... 苏州를 제외하곤, 이미 다녀온 곳이란 말씀. 上海야... 너무 자주 돌아다녀서-_- 周庄은 작년 여름에 엄니를 모시고 다녀온 적이 있다.

소주는 江苏 최대의 공업도시이다. 그러나,

시외곽의 얘기이고, 관광지 근처는 그대로 환경 보존 中.

无锡를 떠나 버스로 1시간 좀 더 가니 苏州가 나왔다. 사실 이 苏州는 나와 상당히 인연이 없는 도시이기도 하다. 无锡에 10개월을 있으면서, 기차로 40분 거리인 이 곳을 그냥 무시때리고 上海로 향했고-_- 南京에 있을 때에도 항상 上海 갈 때의 경유지였지, 한번도 이 도시를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뭐 사실, 杭州를 이미 두어번 갔다오고나니, 苏州 는 별거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고. 흠흠. 암튼, 도착하자마자 단체 식사를 했고, 차려진 밥상에 앉아서 끼니를 떼웠다. 뭐, 나름 분위기가 있는 식당이었는데, 이번에 체험한 사실이지만, 아무리 이벤트가 있고, 뽀대가 나는 식당이라 할지라도, 단체 여행객이 많은 식당은 다 거기서 거기다.-_-;

뭐 별거 아니지만, 우리는 차도에서 버스를 내렸고, 서양 코재이들 차는 인도, 식당 바로 앞에 정차해서 내리더라.-_-;

식사 후, 바로 목적지로 향했으니... 그 곳이 바로, 한산사(寒山寺)라는 절이었다. 상해,소주,항주... 이 코스를 패키지로 묵은 한국 관광상품이 많은건 익히 알고 있엇지만, 방금 네이버에서 '한산사'를 한번 쳐보니... 와, 많다.-_-+ 정말 많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온단 말이냐. 버스 안에서 조선족 가이드 아저씨의 이런저런 이바구들을 듣고, 그래도 처음 온 곳이니 제대로 좀 들어야겠구나... 싶었는데, 일행 수도 만만치 않았고, 또한... 날이 어찌나 덥든지, 가이드 아저씨도 진이 빠질려고 하고... 근데, 개인적으로-_-+ 조선족 말투 듣는걸 꺼려해서, 대강만 듣다가, 그냥 寒山寺 구경이나 했다.

이곳이 바로 寒山寺.

寒山寺 입구 벽에 그려진 풍경도.

입구를 들어서고.

한산사(寒山寺)는 502년 梁나라때 지어졌다. 그리고 200년 후 당나라때의 승려인 寒山僧이 절에 머물러 예전의 이름을 한산사(寒山寺로 고쳤다. 여러 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화재도 있어 훼손이 되었고, 청나라 말기에 다시 고친 것이 지금 현재의 모습이다. 이 곳에 유명한 시(詩)가 있는데 바로 张继의 <枫桥夜泊>로 이 절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뭐 역시나 이 절을 돌아다니다보면 이런저런 비석, 혹은 벽에 이 시가 새겨져 있는 것을 지겹도록(?) 볼 수 있다. 한산사에서 가야할 코스는 대웅보전(大雄宝殿), 장경루(藏经楼), 종루(钟楼), 비문(碑文) <枫桥夜泊>, 풍강제일루(枫江第一楼)가 있다.

이것이 청말 이토 히로부미가 기증했다는 동종(铜钟).

寒山과 拾得가 있는 곳.

이 둘은 연꽃(和)과 꽃병(平)을 들고 있는데, 평화를 의미한다.

대웅보전의 내부 벽에는 36수의 시가 적힌 비가 있으며, 양측에는 16 나한상이 있다. 실내에 있는 두 석각으로 된 화상(스님)은 바로 寒山(혹은 寒山子라고도 한다)과 拾得이다. 이 둘은 모두 당나라 정관(贞观), 그러니까 당태종 이세민때의 사람으로, 막역지우였다. 대전 앞에 있는 정원에는 여섯그루의 五针松이 있는데, 이는 일본 爱媛县의 각계 우호방문단이 1976년에 심은 것으로, 爱媛县에서 이미 5년동안 자란 것을 이 곳에 심은 것이다. 대웅주전의 우측에는 또한 동종(铜钟)이 하나 걸려 있는데, 이 것 역시 일본인이 전해준 것으로, 바로 이토 히로부미가 선물한 것이라 한다. 절내에 종이 몇 개 있긴 있는데, 우째 이 종만큼은 손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_-;

대웅보전의 16나한상.

종루는 2층으로 되어 있으면 8각이다. 건물 아래의 석비는 한산사 보수때 새로 세워진 것이며, 정면의 비문들은 민국시기에 강소도독이었던 程德全이 고른 것으로, 비석의 뒷면에는 한산사 보수때의 헌금한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이 있다. 张继의 시속의 종은 원래 이 종루에 있었다고 전해졌었으나, 현재의 종은 모두 당대의 것이 아니라, 청나라 광서제 32년에 새로 주조된 것으로,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역시 중공 성립 후, 원래 모양으로 복원했다.

이 것이 张继의 <枫桥夜泊>가 새겨진 석비.

당나라때의 시인 张继가 슨 <枫桥夜泊>라는 시의 석각에는 “月落乌啼霜满天,江枫渔火对愁眠。姑苏城外寒山寺,夜半钟声到客船。”라고 새겨져 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시인 张继는 당시의 수도였던 장안(지금의 서안)에 과거를 치러 갔고, 떨어지기를 반복 寒山寺에 들렸는데, 야밤에 枫桥 부근의 배에서 잠을 못 이루던 차, 寒山寺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이 시를 지었다. 이 시는 많은 일본인들이 알고 있다는데, 이는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인들이 쑤조우여행을 하면 이 곳은 당연히 들린다는 것.


<枫江第一楼>

이 누각에 오르면 바로 앞 기와에 무언가가 보이는데,

기와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빈다.

풍강제일루는의 전신인 枫江楼는 300여년전에 이미 사라졌다. 지금의 건축물은 쑤조우시 인민정부가 유적지 보호를 위해 1954년 한산사를 보수공사할 때 성내의 저명한 花篮楼를 이 곳에 옮겨 지은 것이다.

높은 누각에서 보이는 寒山寺 내부 모습.

이 곳은 법당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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