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生.有.約./→ 雜感

10여년전 점빵은 그때 모습 그대로.

우리팬 2006. 10. 2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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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간판하나 없는 이름 모를 점빵.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근데, 이상하게 내가 그대로 10년 넘게 살았었던 부산의 '대연동'이란 곳은 변하긴 커녕 예전 모습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겠다. 지하철이 생기고, 도로가 정비되고 골목길이 깔끔해진 것은 좋은 모습이나, 교육청이 생기고 여기저기 고층 아파트가 생긴 모습은 솔직히 그리 달갑지 않았다. 되려 이전 익숙하고, 정감 넘쳤던 꼬질꼬질한 가게들의 모습은 하나둘씩 사라졌고, 또 이런저런 노점상들의 숫자도 줄어버린 것이... 그래도 대연동을 통틀어 2동은 상권 중심의 동네였는데 말이다, 이제 이러한 모습은 많이 퇴색되어 버린 것 같더라고.

대연고개 오르막길을 산동네쪽으로 따라 올라가다보면 눈에 띄는 조금은  규모가 있는 슈퍼가 하나있다. 요즘같이 편의점이 여기저기 판치는 세상에, 이런 동네 슈퍼를 보면 그래도 반갑긴 하더라. 근데 이 슈퍼는 나름대로 소시적 허벌난, 수없이 많은 추억거리를 제공해준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서도.

고1때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고2때부터 제대로 본격적으로 판을 만들어 마시고 다녔다. 94년 북한이 쳐들어오네마네 사재기를 하네마네 하는 시절에, 나와 李군은 소주를 사재기 했음 했지, 라면은 그럭저럭 먹을만한 주식이었을 뿐이었다.-_- 당시 李군의 아지트에서 가장 가까웠던 슈퍼가 바로 이 슈퍼였는데, 있는 돈 없는 돈 다 끄접어내어다가 소주 한병부터 시작해서... 왔다리 갔다리 맥주에, 청하에... 별거 아닌 과자 안주를 곁들어 인생이 어쩌네, 사는게 어쩌네... 허벌나게 씨부렸던 것 같다.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대학 이후로는 이래저래 남들만큼 산답시고, 혹은 남들처럼 살기 싫어 정신없이 하는둥 마는둥 살아왔으나, 이 혈기왕성 최고의 주량을 자랑했던, 아니 술은 절대 나를 이길 수 없다, 라는 꿋꿋한 사명감에 허벌나게 들이키며 별에 별 잡다한 개똥철학들을 나불거리며 세상의 고민을 다 했었던 것이다. 그래, 그때가 고2, 그리고 고3때까지였다.

남들은 소위 말하는 고삐리 때의 방황 시절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 여럿이서 골방에 앉아 '술'이라는 매개체로 별에 별 개똥철학을 만들어 유포(?)했던 것은 방황, 아니 일탈 축에도 들지 않는다. 차라리 착하게 놀았다, 다만,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저그런 학생이었다, 라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때 그 원년의 맴버들... 몇주전 그 몇몇 맴버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인생살이의 주제를 끝내고, '그 인간들'에 대한 얘기가 오고갈 때... 그 당시 장소와 그리고 나이상으론 대장겪이었던 李군이 TV에 나왔더라, 라는 말에 연락을 취했고 통화도 해봤으나... 서울에 있다는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닌, 이젠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 세상에 스며들어 사는 그런 제대로 된 사람인 것 같았다. 그 날, 자리가 파하고... 씁쓸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상도 변하고 사람들도 변한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옛모습 그대로인 동네 모습을 위안삼을 수 밖에 없었으니...

내가 지금 하는 생각도 10년 뒤엔 그대로겠지?


李군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창작을 하시는데, 그때 우리가 나불거렸던 개똥철학이 별건 아니지만, 그때 그 열정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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