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生.有.約./→ 雜感

나는 솔직한게 좋거든요.

우리팬 2010. 1. 4.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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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너무 솔직하면 손해를 본다는 말이 있다. 아니, 어쩌면 역사적으로도 대나무처럼 자신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절대 제대로 살지 못 하였을 뿐더러, 평가에 절반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니 죽고나서야 어지간하면 평가를 받았다는데 위안을 둘 수 밖에. 하여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하여도, 분명히 솔직한 사람들은 분명 이 세상에서 손해를 보고 살고 있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미숙아로 취급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남으로 하여금 나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갖게하기 위해 하는 입에 발린 소리, 나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버리면, 언제나 나는 후회를 한다. 적어도 살아가면서 나 자신 스스로는 솔직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남을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자신을 이해시키는 본능도 필요하다고 본다. 아닌거 뻔히 알면서 그렇다, 그렇다 세뇌되어 말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시키는 행위인가. 어쩌면 꿈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떠한 일이 있든, 그 일에 대해서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나 자신을 용납시키는 일이다. 자신도 용납을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용납시킬 수 있겠는가.

허나, 이런 이론적얘기가, 어쩌면 이런 얘길 들으면 '아, 그렇구나.' 할 수 있는 얘기가... 비현실일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이 세상이 나는 슬프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해서라도 먹고살수 밖에 없는 이 현실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적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은 살면서 현실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어,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게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것이 더욱 슬프다고 느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내가 언제까지 숨쉬면서 이 세상에 속해 있을진 모르겠지만서도) 분명 이러한 삶의 모습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결국 솔직하고, 아니 솔직하게 살고싶은 사람들은 결국엔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뀐다는건 바랄 수도 없는 문제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이해를 시킨다는건, 분명 이후에는 부득한 일이리라.

어쩌면 이러한 생각이 2010년에야 들어와서 나도 생각하게 된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지금이라도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체에 위안을 삼고자 한다.


나는 이번 신년 해돋이를 보면서 이러한 소원을 빌었다. 적어도 나는 앞으로 솔직하게 살게 해주세요. 정말 별거 아닌 문제인데, 정말 중요한 문제일 수도~ 내 나름대로는 생각한다.

맞는걸 아니라고 하는 것은 나의 실수이지만, 아닌걸 맞다라고 하는 것은 나의 비겁함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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