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生.有.約./→ 雜感

'존재'라는 그 허울좋은 가치에 대하여.

우리팬 2009. 10. 2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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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면서 좋든 싫든지 간에 무수히 많은 사람과 이런저런 緣을 맺으며 살아간다. 아니, 요즘 세상에는 생뚱맞는 사람까지 알고지낼(?) 판국이다. (나도 요 언젠가, 무슨 리조트에서 상품 판다고 전화가 왔더라.-_-;;;) 그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 나에겐 이런 존재이며,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라, 나에겐 저런 존재이니 뭐니 망구 개뿔.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딴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이 그 사람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를 물어보는 것은 어떠냐고. 사실 남을 알기보다 자신을 아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닐까나. 무작정 내가 이 사람한테는 이것을 해줬으니, 나도 이만큼은 받아야 된다, 라는 맹랑한 생각을 가지 말고, 이 사람은 원래 이러저러한 사람인데, 나라는 존재가 무엇을 하든, 그 무엇이 이 사람에게 어떠한 의미가 됐는지, 혹은 그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줬는데, 이 사람은 왜 하필 나에게 그러한 것을 해줬는지...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앎직한 문제이지 않을까나.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존재의 가치'이다. 어떤 사람은 망구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그렇다고 아무런 손해도 입힌 사람은 아닌데, 우째... 내 인생에서 지울 수도, 그렇다고 잊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을려고 하니... 지워지지도 않고, 그저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만 신경이 쓰일 뿐이다. 내가 도움을 받는 것도, 그렇다고 내가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게 바로 존재의 가치이다. 여기서 말하는 존재의 가치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소시적 느꼈던 부모의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이유인즉, 분명 어릴 적 당시에는 울 엄니가, 울 아부지가 나한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 것 같은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 분들이 있었음으로 인해서 내가 이만큼이나, 혹은 이만큼이라도 되었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신을 낳아준 부모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살면서, 살다보면 자신에게 있어서 분명 존재의 가치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까지는 말은 망구 내 생각이다. 이 생각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는 아직도 주위에서 찾지 못했다. 사람이 존재함으로써 인헤 생기게 되는 감사함... 이는 그 사람이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혹은 나와 가깝거나 멀거나... 별 관계가 없다. 결국 그 가치 또한 나 스스로가 생각하고 결정하며, 그럼으로 인해 나 혼자만이 감사해야 할 것임에.

그럼에, 나는 이제까지 내가, 혹은 나를 거쳐갔던 사람들에게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좋았던 나빴던... 적어도 그럼으로 인해 나 역시 좋고, 나쁨을 확실하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생기게 해줬으니까. 뭐, 가끔은 가짢은 마음이 불쑥 드는 사람도 생각이 나지만서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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