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生.有.約./→ 雜感

'공부'.

우리팬 2010. 1. 11. 07:47
반응형
언젠가 학부시절에 무턱대고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 연구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미리 약속을 하거나, 혹은 전화라도 한통 하고 찾아뵙는 것이 예의인데, 그 당시엔 가슴속에 응어리 진 것이 많아서인지, 기분으로 무턱대고 교수님 연구실 방을 노크 했다. 참... 상황이 그랬다. 바로 10분 뒤면 교수님은 강의를 가셔야 했었고... 나는 내딴에 들어가서 뭔가 하소연내지, 질문을 던질거리가 많았었고... (학문적인게 아니라서 더욱 그랬었지비.) 그 고마우신 교수님은 내가 나름 급하다(?)하는걸 느끼셨던 것 같고, 일단 연구실에서 기다리라고 말씀을 하신 후, 강의를 나가셨다. 아마 내 기억에는 50분 수업을 다 하신게 아니라, 30분인가, 40분 뒤에 돌아오셨다.

교수님이 돌아오셨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무슨 진학상담도 아니고, 게다가 교수와 제자의 얘기도 아니었다. 인생의 선배, 그리고 아버지 같은 분이었던지라, 이런저런 가슴속에 뭉쳐있던 응어리를 던져내면서 다행히 내 나름대로는 마음이 차차 안정되어 갔다. 그러다가, 나중에 딱 '학문적'(?)인 질문을 꺼집어냈던 것이...

교수님은 왜 공부를 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평소에도 생각은 했었고, 또 궁금하기도 했던 것인데... 그래도 그 자리에서 뜬금없이 이런걸 물어본다는 자체가 어색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교수님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을 해 주셨다.

나는 원래 교수가 될려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생각을 해보진 않았는데,
공부라는 것을 하고서 생각을 해보니... 공부를 하고있다보니까, 사람이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하고 살게 되더라.

라는 말씀이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베인 분이라 그렇게 멋드리지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 말씀이 그 이후에도, 지금도... 그리고 내가 죽을 때까지 귓속에 맴도는 말이 될 것이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취업을 목적으로 어학연수를 갔지만... 어학연수를 마치는 시점에서 그 말씀이 떠올라 중국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또 이제까지도 책을 놓치 않고 살아오면서 내 나름대로는 책 겉장은 봤다, 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사실 교수님의 그때 말씀을 직접 실감하지는 못했었다.

공부, 진학, 석사, 박사... 그리고 학회, 이리저리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이리저리 기웃거리면서 소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으로 보게되었고, 또 그 속에서 '사회생활'이라 부르는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는 못하겠고, 딱 본론만 얘기를 하자면, 소위 공부를 한 사람이라도 결국엔 사람이고, 결국엔 우리가 사회를 나가서 겪게되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책을 놓치 않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아니 존경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그 당시 직접 눈으로 본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기대했던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한 것을 겪고나니... 한동안은 책보기가 싫어졌다. 대학원 수업엘 나가도 교단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는 중국인 교수 역시 좋게 보이질 않았다. 가끔씩 나를 불러다가 식사를 한 중국인 지도교수 역시 좋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심지어 매주 배드민턴을 같이 쳤던 박사생 형들 역시 믿음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에 그 말씀을 해주셨던 교수님을 뵈었더라면 그런 '슬럼프'도 오지 않았을 것이고, 또 나름대로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나와 교수님이 사이에 있는 '황해'라는 바다는 그렇게 멀고... 아득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논문학기에 들어서자, 중국인 지도교수는 일본의 동경대 초빙강사로 날아가버렸다.-_-;


그 후 이래저래 살아왔는데... 요최근에서야 그때 들었던 그 교수님의 '공부'에 대한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람이 살면서 하지 말하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라는 것을. 그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기 싫어도 하게 되는 것이 이 사람살이이며,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또 자신이라는 것을. 자신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용납할 수 밖에 없고, 자신이기 때문에 스스로 이해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것을 목적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단련시키고, 참을성을 키워나가며, 그럼으로 좀 더 진지하게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을. 단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이런저런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고, 또 그럼으로 인해서 남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 '공부'외에도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그 교수님은 '공부'만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되니 문득 요최근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것들이 하나씩 술술 풀리게 되었다. 사실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 생각을 떠올리니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뻔한 결과, 앞으로의 불안함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분이 좋다, 무언가 내 손에 쥐어지거나, 그렇다고 내 눈앞에 떡허니 이득이 온 것도 아닌데 그 어느때보다도 마음은 풍족하다. 아니 다시금 예전 그 순수했던,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 나를 바보라 불러도 좋다, 내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서 오도방정을 다 떤다고 뭐라해도 좋다. 내 딴에는 사람이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제서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행복하다. 그렇다고 이제껏 살면서 남에게 폐가되는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크게 후회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고, 또 어떻게 변하게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오늘 느낀 이 기분, 감정, 고마움을 가지고 산다면 이제까지의 나,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낫아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결국 나는 '공부'를 또 하게 된 것이다. 책으로 보는 공부가 아닌 '인생의 공부'라는 것을.

누야, 心から感謝します。


하여간 X버릇 남못준다고 하더니... 잠시 접는다 해놓고, 그 '잠시'라는 기간이 고작 4일이었다. 아, 반성에 또 반성.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