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生.有.約./→ 雜感

'친구'라는 말.

우리팬 2010. 1. 1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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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의 의미라 하면, 첫째 부산 사투리로 만들어 흥행한 첫번째 영화라 함과, 또 하나가 '친구'라는 의미를 영화의 내용을 통해 진지하게 생각해주게끔 했다는데 있다고 하겠다. 사실 소시적부터 '친구'라는 개념은 참으로 불분명했다. 동네에서 치거니 박거니 하다가 또래든지, 혹은 동갑인 경우엔 무조껀 '친구'가 되었으며... 학교에 들어가니 같은 반 아이들도 모두 '친구'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즈음에는... '대학에서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라는 말이 이래저래 돌고 돌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내 대학동기들은 초중고등학교때 부르던 '친구'의 개념을 신앙처럼 믿고 있었던 아해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그 진정한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직접 보진 못했다.

이런 경우도 있다. 같은 반만 아니되었을 뿐이니,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어랏, 같은 학교였네? 라면서 만나게 되는 경우... 그 반가움은 더 커질 수 밖에 없고, 사는 동네까지 비슷하다면 거의 찰떡궁합이다. 이제 성인인만큼, 집도 근처인데 '어이, 친구 한잔해야지?'라며 쉽게 불러내거나 달려와서 이런저런 각자의 주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역시 이래서 친구는 좋은거야.'라고 잠시 '친구'라는 환상에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허나, 아무리 '친구'라는 사이라 할지라도... 결국엔 살아봐야 안다는 점. 수많은 친구들 역시 하나의 어휘인 '친구'로 부를 수 밖에 없지만, 그 친구가 나에게 있어 어떠한 친구이며, 그리고 나를 어떻게 생각해주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친구 역시 나의 대인관계 中의 하나이며, 그 친구들 역시 필요에 따라 나를 찾으며, 필요가 없어지는 경우 멀리하는 경우도 있다. 주위를 돌아보라, 진정으로 내 친구는 몇이나 되는지...

이 나이가 되니,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는 이는 몇 없는 것 같다. 아니, 나 역시도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2,3명에 불과하다. '친구'라는 명목하에 술자리나 만드는 친구보다는... 나에게 뭔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축하해주며, 나에게 뭔가 안좋은 일이 생겼을 때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사람 몇만 있으면 된다. 혹은, 나와 함께 성장한 친구이기에 그 나름대로의 경험담이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친구라면 더할나위도 없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 할 이 험난한 세상에... 진정으로 나라는 사람을 알아주며, 진정으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그게 곧 '친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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