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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生.有.約. 175

필요한 사람.

나 힘든데, 옆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로 나를 녹이면서 챙겨주는 척 해주며 사는 그저그래 알고지내는 사람보다는, 나 힘들때,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말 안할 말 안 가리고 기분 나쁘게 심지어 화까지 나도록 옆에서 톡톡 쏘는 사람이, 나중에 나이 들고 나면 그립더라고.-_-;;; 뭔가라도 나한테 해줘서가 아니라, 그만큼의 관심이라도 갖어준게 피눈물나게 정말 고맙더라고. 내가 이걸 나이 서른 되니까 생각이 나더라.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됐지만. 사람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 스스로 굳이 잘난체 하며 혼자일 필요는 없다. 국군의 날이 왜 중요한지는 군인이 되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하루 쉬걸랑.-_-;;; 국군의 날이 아니라, 군바리들 하루 쉬는 날이다. 그래도 안 부려먹고 나라에서..

'토토로' 인형과 나, 그리고 여자의 심리.

사실 나는 학부 일어일문학과 출신이지만, 일본쪽 애니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다. 소시적에 소년중앙내지 보물섬, IQ점프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등과 같은 월간 만화잡지를 죄다 모아 소장을 했던 적이 있어서인지, 나이 좀 먹고나니 만화라면 일단 고개부터 흔들고 본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던 애니, 특히 일본 애니가 '에반게리온'일터이다. 것도 군제대를 하고 자취생활을 하던 中 비됴대여점에서 비됴를 빌릴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자, 친구넘에게 구워진 '에반게리온'을 빌려봤을 뿐. 흠흠. 엊그제 陈양의 저녁대접으로 이런저런 이들과 만나 귀국 전, 나름대로 회포를 풀고 헤어질려던 찰나, 덥썩 가방에서 꺼낸 봉지에서 이 인형이 나왔는데, 거참 갑자기 옛날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나더라고. 위에서 언..

나의 PC통신상, 인터넷상의 ID 변천사.

언젠가, 온라인상으로만 알고지내는(?) 苏州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 처자의 블로그 링크의 맨 끝에 내 블로그가 살포시 걸려있다고해서 확인을 했더니 '吴瑞风'이라는 낯선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_- 모꼬 싶더라, 하기 전에 이 처자 블로그 링크에 걸린 블로그들이 참으로흥미롭더니만. 특히 黄健翔은 지난 월드컵 이탈리아vs호주 중계 中 '이탈리아 축구 만세!'라 울부짖었다가 X된 그 유명인이아닌가. (사실 이 사람이 무얼하든, 중국내 축구 캐스터나 해설자는 다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근데 이 아저씨는 超女 출신의 张靓颖와 모종의 관계라나 모라나가 더 관심을 끌더니만. 나이차가 몇살이냐...-_-+) 夏雨는 '햇빛찬란한 날들(阳光灿烂的日子)'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고. 암튼, 대략 4~5년전부터 사용하기 시..

종종 갔던 블로그가 폐쇄되었을 때.

PC와 그리고 전화선내지 랜선으로 인한 '因缘'을 접한지가 어언 15년 정도 되었다. 그러고보니 내 인생의 반은 이러한 인연을 몰랐을 때이고, 그리고 몰랐던 시간만큼 지금까지 그 인연에 대해 집착하거나, 딴에 중시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뭐 쉽게 얘기하자면 '~님'이라는걸 손으로, 그리고 입으로 표현한 것이 꽤나 오래되었다는 말일 뿐이다.-_-+)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소시적에는 되려 동일시 시키지 않을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은 학교에서 안 사람이고, 저 사람은 통신으로 안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내 나름대로의 경계선을 만들어 사람을 구분해 대했으며,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생활이 자유분방함을 넘어 방종으로까지 도달했을 때서야, '뭐, 사람 만나는거 다 똑같네.'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가수 윤종신과 나.

고등학교 입학전까지는 그다지 한국가요는 물론 다른 분야의 음악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봤자 종종 산 몇장의 레코드판이 다였고, 내가 직접 산 것은 10장도 채 되지 않았으니, 따져보면 거의 관심이 없었다, 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당시엔 카세트 테잎이나 레코드판을 내 맘대로 살만한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지도않았으니.-_-+ 우야등가 고등학교 전까지 지겹도록 들었던 노래는 아부지 덕에 '최진희' 아줌마 Best가 다였으니... 덕분에 아직도 이 아줌마의 노래는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다.-_-v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우야다보니 노래방이란 곳에도 가보게 되었는데, 내 기억이맞다면 내 친구 성호라는 넘과 단 둘이 갔었고, 당시에 고삐리가 노래방을 간다는게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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