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生.有.約./→ 雜感

선생님 댁.

우리팬 2009. 5. 1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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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스승의 날'도 다가오고해서 살포시 옛날 이야기 하나 꺼내보고자 한다. 사실 아직까지도 나는 이 '先生'이란 단어에 대해서 정의를 확실히 못 내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Teacher 의미의 선생이라면, 먼저 배운 학생, 그래서 후학에게 교육을 전수하는 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고, 중국어에서처럼 단지 먼저 태어난 사람, 곧 손윗 사람이라는 의미를 둘 수도 있다. 다만, 요즘 한국에서는 간혹 마땅한 호칭이 없는 경우 '선생'이라고 쓰는 경우도 더러 있더라만. (구체적 사례를 들려니까 해당 직종에 대해 깎아내리는 것 같아, 대강... 농담같은 사례를 하나 들기로 한다. 부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성의 반은 '선생'이라는 호칭을 듣고 있다... 정도.-_-;) 하여간 나는 아직까지는 전자의 경우로 '선생'이라는 호칭을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로는 역시나 중국에서 몇번 써본 적이 있는 듯.

초딩 1학년때... 담임샘 댁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20년이 지난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 성함은 물론이거니와, 댁이 어떤 맨션인지, 대강 위치가 어디였는지도 기억하고 있다. (정확한 호실은-_-;;;) 왜 갔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그 당시의 경험은 왠지 모르게 뿌듯했으며...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나는 샘 집에 놀러가봤지롱~'이라는 자만심 비슷한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뭐, 그래봐야 딱 한번 놀러가서 밥한끼 먹고 온거라고는 하지만, 왠지 그때부터는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좀 더 친밀하게 다가왔고, 좀 더 학교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5학년때 담임샘 댁도 집근처였던지라 몇번 지나가다가 들어간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때 담임샘은 남자분이어서인진 모르겠는데, 별다른 특별한 기억이 없다. 엄청 무서워했으니께롱.


그 후론 대학때 전공 교수님 댁에 술자리의 '막차'로 몇번 간 적이 있다.-_-v 막차로 편하게 댁에서 드시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까다로운 입맛때문에, 직접 만든 안주에 양주를 드시기 위해서인지... 하여간 학부말에 나 역시도 꽤나 들락날락 거렸다.

방문 이후 몇달 뒤에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사진을 찍어뒀다. (2003.7.6)

그리고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당시에 다른 유학생들 틈에 끼어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기억이 선명한걸 보니, 나름 신선했던 경험이었던 것 같다. 내가 당시 있었던 无锡의 江南大学의 어학연수반은 고작 두개밖에 없었다. 하나는 중급반으로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고, 반수 정도가 일본인, 그리고 라오스, 한국인이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고급반으로 내가 들어갈 당시에는 나까지 모두 3명이었는데, 일본인 아줌마 혼다상(오~ 이름 안 까먹었군.-_-v)은 빼어난 실력을 자랑을 하다가 결국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고급반을 들어간 이유는 별다를거 없다. 단지 학생수가 적기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점도 있었던 것 같고, 또 아니 좋은 점도 있었던 것 같다.

고급반을 가르치는 노선생이 있었는데, 성이 顾씨였다. 그런데, 이 어학연수반에서 가르치는 선생들 중에, 顾씨 성을 가진 선생이 두명이나 더 있었기 때문에 이 노선생을 老顾 老师라고 불렀고, 여자선생을 女顾 老师라고 불렀으며, 가장 나이가 어린 남자선생을 小顾老师라고 불렀다. (이 小顾는 07년 여름에 다시 江南大学를 찾았을 때 만났는데... 여전하시더니만. 지금 이 학교에 남아있는 유일한 顾老师일 듯.)

이 老顾 선생과는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많다. 그냥 단순히 수업에 들어와서 교재와 함께 중국어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상태를 꼼꼼이 체크하고, 의견 수렴을 해서 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업을 했었다. 말이 자유지, 그 자유를 위해선 책임이 항상 따른다.-_-; 게다가 내가 이 반에 들어가고나서 얼마후 혼다상이 수업에 빠지고나서부턴 라오스 처자 彭玛尼랑 둘이서 수업을 들었는데, 우짜다가 이 처자가 수업에 안 들어오면... 1:1 수업을 해야만 했었다.-_-; 잔소리도 많이 들었고, 조언도 많이 들었고... 小学校에서 평생을 교사로 있다가, 퇴임을 하고 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는데, 내가 들어간 학기를 마치곤 다시 어학연수반 교사직도 퇴임을 했다. 그때 이 노선생에게 배운 다른 유학생들과 같이 火锅집에서 사모님과 함께 만찬을 했었고, 그리고 이 선생의 댁에까지 잠시 방문하게 되었다. 유학생들을 가르쳐서 그런지 거실에는 외국술이 참 많았다. 한국술이 하나도 없길래 얼마후 기념삼아-_-v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안동소주던가... 하여간 한국술을 선물해 드렸다. (안동소주였던가?)

이 노선생이 하신 말씀 中에... 기억에 남는 것이, 일부 가정들처럼 손녀가 놀러오면 가족들끼리는 절대 방언을 쓰지 않는다는 것. 无锡라는 동네가 워낙에 사투리가 심해서 외지사람들은 절대 못 알아듣는 말인데, 필요하지 않은 방언을 굳이 손녀代에까지 남길 이유가 없기에 쓰는 처방이라고 했다. 이런 가정들이 종종 있다. 내가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만다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보통화 흐름속에 나타나는 가정에서의 방언 구사 자제가 더이상 특이한 점도 아니었다. (근데, 막상 수업 中에 '수업외의 중국어 학습'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茶 한통 들고 근처 锡惠公园 가서 앉아있는 영감들 잡아서 회화연습 하라더군.-_-;) 근데 뭐, 가까운 예로... 현재 아메리카의 툴사에서 유학 中인 吴군 역시, 5,6개 사투리를 구사하는 자기네 엄니와는 달리, 보통화외의 다른 지방방언은 절대 구사하지 못했다. (근데 이 아저씨 발음이 웅웅거리는 것이 있어서 나는 처음에 사투리 쓰는 줄 알았다.-_-;)

하여간... 06년인가, 南京에 있을 때 전화연락을 했었는데, 그때는 시간이 나지 않아 찾아뵙진 못했고... 또 정신없이 짐싸들고 한국으로 들어왔으니... 거참.-_-; 꽤나 긴 시간이 흘러버렸는데, (알게된 것이 02년 후반기이니 벌써 7년이 다되어 간다.) 이 영감님... -_- 아, 이럴 때는 정말 안부 연락하기가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일단... 15일 기념으로 포스팅 하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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