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生.有.約./→ 雜感

다이제스티브 이야기.

우리팬 2009. 6. 25. 07:04
반응형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눈을 뜨니 시계가 새벽 3시다. 다시 누울까 고민하던 차에 잠이 깨어버려-_- 할 수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 전원을 켬과 동시에 입이 심심하다, 라는 생각이 들어 살포시 집근처 단골 편의점으로 갔다. 새벽 4시가 다된 새벽녘 풍경은 참으로 아리송하다. 아직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의 한밤중인 듯 싶지만, 여름철이라 살포시 하늘이 밝아져옴을 볼 수 있으며, 또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바쁜 빗자루 소리도 들린다. 아파트 단지 안은 아직 한밤중이지만, 단지만 벗어나면 환한 저녁 풍경과 같다. 24시간 식당들과 24시간 편의점 그리고 도로변에 세워진 무수한 택시들.

편의점에 들어가서 과자코너를 돌았다. 평소에 그다지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는터라 라면코너-_-로 가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왠지 과자 부스러기가 땡기더라고. 고민끝에 커피와 함게 먹을 수 있는 다이제스티브를 손에 집었다. 계산을 하는데 편의점 알바생 언니야가 새로나온 5만원권을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다. 보는 것도 그렇고, 만지는 것도 그렇고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_- 그래도 상대의 배려(?)를 그냥 무시하기엔 미안한 생각이 들어 받아들었다. 뭐, 이것도 예전에 5천원권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신기하다가 말지 않겠수. 개인적으로는 화폐에 0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썩내키지 않는다. 언젠가 라오스 지폐를 본 적이 있었는데, 고액권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RMB와 비교해보니 돈이 돈도 아니더라고. 우리돈 5만원이면 RMB 250元쯤 될터이다. 헐...~ 이 넘의 돈이 뭐길래. 돈돈돈.

다이제스티브를 잡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몇년전의 일이 떠올랐다. 언젠가 중국에서 갓 돌아왔을 때, 연구실에서 숙식을 했을 때가 있었는데, 학교가 내가 쓰는 은행과 거리가 꽤나 멀어 오후에 미처 돈을 뽑지 못해 현금이 없었을 때가 종종 있었다. 어느날 저녁녘에 주머니를 뒤져보니 950원인가?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편의점에서 은행의 체크카드가 되는지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타은행에서 인출시의 수수료에 대해 혐오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 날은 밤을 새면서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초저녁에 뭐라도 사둬야 새벽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편의점으로 갔다지.

그 날도 그랬다. 왠지 입이 심심해지는거다. 과자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니 과자부스러기보다는 그래도 국물있는 라면이 좀 더 체력적으로 낫다는 당연한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과자가 먹고 싶었다. 그러나 과자는 새벽까지 버틸 체력을 책임질 수 없다. 아무래도 연구실이다보니 끊여먹는 라면보다는 컵라면을 사야했는데, 당시 그 편의점에는 1000원이하의 컵라면이 없는거다. 헐. 딱 1000원짜리 컵라면이 있었는데, 어랏... 50원이 부족하네? 다시한번 언급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은행의 체크카드가 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몰랐을만큼 '돈'에 대해선 큰 미련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딱 50원이 부족하다. 100원짜리 하나도 아니다. 50원이었다.-_-; 어지간하면 나도 사람좋은 능글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50원 정도야 나중에 갖다주다느니, 혹은 깎아달라느니 하는 철판을 깔 법도 했을터인데, '한국'이란 나라에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950원짜리를 찾기 시작했다. 950원으로 뭘 살 수 있을까. 뭘 사면 야식거리, 아니 밤을 새는데 있어서 좀 더 체력을 버틸 수 있게 하는 먹거리가 있을까나. 나는 그때 또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었다. 편의점은 정말 비싸다는 것.-_-; 중국에선 어지간하면 대형마트와 집근처 편의점, 슈퍼의 가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생수 하나만 해도 두배이상 차이나기도 하더라. 이럴 줄 알았음, 저녁에 미리 거리는 좀 되지만 대형마트를 찾아가서 먹을 것 좀 사다놓을 걸 그랬다...라는 후회를 하며 편의점 안 모든 물건의 가격표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눈에 띄었던 것이 달아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부스러기가 많이 생겨 먹기도 불편한 '다이제스티브'였다. 그래 이건 열량도 만만치 않을테니까 괜찮지 않겠는가... 그나마 연구실에 남아도는 것은 믹스커피였으니 같이 먹을만 하겠지...라는 생각에 얼른 집어들었다. 오백원짜리 백원짜리 오십원짜리 동전을 탈탈털어 계산을 하는데 왠지 모를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돈'에 있어서 부족함을 느꼈던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생각치도 못하게 발생한 일이었던지라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에 수많은 망상, 잡상들이 다 들더라고.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다는 것보다는, 돈에 있어선 그 어떠한 인정이나 사람관계에 냉정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 또 있을 때는 모르지만 없을 때는 자신 스스로도 비참함까지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돈이 아니던가. 50원짜리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복잡하게 만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늘 새벽에 내가 손에 집은 다이제스티브를 쳐다보니 그때의 서글픈 잡상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곤 1,000원에 계산한 다이제스티브를 보며 '한국 물가 또 올랐네.'라는 생각에 잠시나마 치가 떨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