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生.有.約./→ 人緣

또 한번의 연락처 정리.

우리팬 2010. 1. 15.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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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을 2000년부터 써왔다. 줄기차다. 사용했던 컴퓨터만 해도 몇대인디... 컴퓨터를 바꿔 사용할 때마다 꼭 챙긴 화일이 outlook.pst였다. 이제는 불어불러 몇백메가나 되었고... 그나마 이제는 이런저런 잔머리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좋아져서 그냥 대용량메일을 이용해 옮기는 것이 훨씬 편해졌다. 허나 이런저런 원인으로 몇번이나 그 화일을 분실했었다. 메일도 날라가고... 연락처도 날라가고... 몇번이나 날려먹긴 했어도, 그래도 03년부터는 아주 잘 보관을 하고 있다. 사실 메일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지나간 과거려니... 그리고 내가 받았던 메일 中에 일회성으로 도움을 요청한 메일의 수도 만만치 않았으니. 그러나 연락처만은 분명 내가 살아온 모습이었다. 단지, 그 사람의 이름과 당시 연락처만이 아닌, 가능하면 많은 것을 입력하고 살았었다. 집전화, 주소... 그리고 내가 입력할 수 있는 간단한 프로필 정도.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시했던 것은 아마도 이메일 주소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은 아닐테지만, 핸드폰 번호는 쉽게 바뀌더라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이메일주소인 것 같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에야 이제껏 3,4번은 대표메일 주소를 바꾼 것 같다만, 그래도 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표주소를 잘 바꾸지 않는 것 같더라고. (아, 한메일에서 이사간 사람들의 수는 적지 않았다. 이 역시 한메일이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메일이라고 하기엔 조금 멋쩍지.) 전화는 아니더라도, 편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내가 어디로 사라지든, 이메일로나마 사람들에게 연락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랬다.

내 기억이 맞다면 02년에 중국으로 떠나기 전의 연락처에 등록된 사람의 수는 200명이 약간 넘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면 수정은 귀찮아서 못했지만, 아주 가끔씩 연락처 삭제를 했었다. 그러면서 내 나름대로 내 대인관계를 끊어버린다. '이 사람은 더이상 연락할 일이 없다.', '이 사람은 연락해도 껄끄러울 것이다.', '이 사람은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다.', '이 사람은 연락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뭐 등등의 이유로, 한명씩... 한명씩 잠시동안 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살포시 Del키를 누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이제는 2010년 1월, 오늘 정말 몇년만에 다시 Del키를 누르게 됐는데 남은 인원이 고작 131명이 남았다. 그 중에 필요에 의해 만들어놓은 연락처 2개를 빼면 129명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129명 모두 연락하고 지내진 않는다. 단지 그들과의 공통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일단 담아둔다. 뭐,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는 생각에. 사실 나도 왜 이 사람들이 남아있을까 의심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나에게 고마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이름만 봐도 얼굴이 떠오르는건 선청적으로 우등한 잡다한 기억력 덕분인 것 같다. 살면서 좀 필요한 것만 기억해도 될련만... 난 왜 잡다한 기억력이 이렇게도 좋은건가.-_-; 예를들면 한국인뿐만 등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아니 갈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나라인 Laos에서 지금쯤은 각자의 생활에 매진하고 있는 아해들, 몇년전에 일정기간동안 잠시 알게된 아해들도 얼굴이 다 기억이 난다. 그리고 파편적이지만, 그들과의 공통된 시간이었던 기억, 혹은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도 생각이 난다. 그러다보니 쉽게 지울 수가 없다. 나라고 그렇게 모진 넘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선 그들의 이름과 당시의 핸드폰 번호, 그리고 이메일 주소라도 있어야 그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언젠가 그 이메일을 통해 다시 손을 내밀지도 모른다.


아직은 산 날보다는 살 날이 더 길다는 생각에 기억을 먹고 살아가긴 싫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기억들을 되새기며 내 인생을 정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그나만 소망도 가져본다. 그리고 그 누군가와 일상적인 대화에서... 이런 아해들도 있었고, 이런 아해들과 이런 일도 있었지... 라며 흐믓해 할지도 모르지. 정말 그때가 올까, 그때가 왔으면 좋으련만.


사람은 욕심쟁이이다. 좋았던 것만 기억하고 싶고, 좋았던 것만 담아두고 싶다. 나 역시도 이 남아있는 연락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나도 욕심쟁이다. 그래서 이 연락처의 숫자가 앞으로 훨씬 더 늘었으면 하는 욕심도 가질 수 밖에 없다. '人緣'이란거... 절대 아무도 쉽게 볼 수 없는 세상살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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